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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쉼 없이 달려온 한국 축구대표팀이 독일과의 4강 전에서 분패, 4,700만 국민과 500만 해외동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래도 정말 후회 없이 싸우고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강하게 느끼게 한 경기였다.
월드컵은 한국을 해외에 홍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 월등히 향상된 점도 중요하지만, 한국인 전체가 한 몸이 돼서 응원하는 모습이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뉴욕타임스는 ‘대~한민국’(Tae-han Min-guk)이라는 용어를 소개했다.
온 국민이 붉은 옷을 입고 목청 높여 외치는 그 소리는 월드컵을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압도했고 미국 방송들도 "대~한민국은 Korea를 의미한다"고 해설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SK 텔레콤 등 한국기업의 광고가 전 세계 방송매체를 타고 나가면서 월드컵 시청자들에게 한국 상품에 대한 인지도를 높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기는 경기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일 뿐이다. 전통적으로 축구에 강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지금 심각한 금융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축구 강국인 브라질의 예를 들어보자. 오는 10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브라질에 경제 위기설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가 개입했다. 그는 이달 초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호세 세라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며, "노동자당의 룰라 다 실바 후보가 당선되면 브라질은 국가파산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뉴스를 탄 후 헤알화는 급락하고 국채 가산금리가 10% 이상 폭등했다. 소로스는 외환 투기자와 자선사업가로서 국제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그의 발언에서 이젠 뉴욕 월가 사람들이 이머징 마켓의 정치 변동기에 지지하고, 배척할 상대를 구체적으로 지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브라질 경제가 흔들린 것은 차기 대선 구도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페르난도 카르도수 대통령이 3선 금지 조항으로 선거에 나갈 수 없게 되자 여권은 세라 후보를 밀고 있지만, 여론조사에서 야당 후보에 밀리고 있다. 다 실바 후보는 당선되면 2,500억달러의 외채를 상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은 외국 빚을 갚지 않겠다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이에 해외투자자들은 소로스의 손짓에 따라 브라질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소로스 밑에서 펀드매니저를 했던 브라질 중앙은행의 아르미니오 프라가 총재는 해외투자자들에게 월드컵 경기를 예를 들어 경제안정을 설득했지만 시장이 꺾이는 것을 막지 못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브라질과 한국은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한 축구 강국이며 또한 연말에 대선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도 증권시장이 가라앉고 금융불안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미국 경제가 다시 나빠지고 브라질 발 이머징 마켓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이지만 한국의 차기 정권 구도가 불안해진 점도 그 요인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한국 증시에 외국인 투자비율은 35%이나 정부 및 대주주지분 등을 제외한 교환가능 주식의 3분의2를 외국인이 흔들고 있다. 지난해 말 이후 한국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 밀려들었던 그들은 최근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한 후 지켜보자는 쪽으로 한발 물러섰다.
야당이 지난 5년 동안 국회다수당을 차지하며 경제개혁에 발목을 잡았다는 해외의 인식을 불식시킬 것인지 현 정부의 개혁이 지연될 것인지 등 여부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히딩크 감독의 능력주의를 배워야 한다고 앞장섰던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의 자녀를 월드컵 기간에 계열사에 취직시키는 구태를 되풀이했다고 지적했다.
월드컵의 열정을 살려 경제에 매진하자는 움직임은 일단 좋은 방향이다. 그러나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국제 사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축구 기술과 응원과는 다른 경쟁에 이겨야 한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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