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끝났다. 한국인은 월드컵에서 세계도, 스스로도 놀란 4강을 이룩했다. 월드컵은 무엇인가? 국가 간의 축구시합이다. 그러나 축구 경기 자체를 넘어 그 이상의 무엇을 포함하고 있다. 한국인은 월드컵을 통하여 한국인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확인했다.
6.25 동란이라는 전쟁이 남긴 폐허 속에서 희망도 절망도 없고 거의 세계 최고의 빈국이던 시절 한 위대한 지도자아래 똘똘 뭉친 한국인이 무언가 저지를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감지되고 있었다. 한강의 기적의 시작이었다. 70년 중반 미국의 시사잡지 뉴스위크는 ‘Koreans are coming’이라는 타이틀로 한국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보도했다.
열사의 나라 사우디의 사막에서 밤에도 불을 밝혀 작업하는 것을 우연히 지나치다 본 한 왕자가 도대체 누구인가를 확인했을 때 그들은 물론 한국인이었다. 인간의 한계라는 사우디의 사막에서 한계를 넘어서는 초인적 능력을 발휘했다. 인류학자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은 낭설이 아니었다.
리비아에 가다피라는 지도자가 있다. 가다피는 80년대 초 리비아의 남쪽에 위치한 차드 공화국 반군을 지원해 공습을 감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중해 연안의 비행장에서 이룩한 비행기가 내륙의 차드를 폭격한 후 귀환하는 거리가 멀어 작전에 어려움이 있자 사막의 한 가운데 임시 비행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불과 1~2주만에 건설한 임시 비행장에서 가다피는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했다. 이때 사막에서 모래알이 섞인 밥을 먹으며 가다피와 고락을 같이한 사람은 지금은 쫓기는 신세가 된 김우중 전 대우 그룹 회장이 었다.
아프리카 단결기구라는 국제적 모임이 있었다. 매년인지 격년인지 아프리카의 국가 원수들이 모여 희의를 했다. 당시 어느 나라인가가 다음 회의의 주최국이 되었으나 사정으로 불과 수개월을 남긴 시점에서 주최를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도 동네 골목대장 정도는 되는 리비아가 이 회의의 주최국이 되는 총대를 지기로 했다. 문제는 리비아에도 그만한 대규모 국제회의를 주최할 회의장이 없었다. 정부는 비상기구를 설치하고 새로운 회의장 건설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여 기존의 한 회의장을 증축하는 계획을 착수했다.
그러나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 공사나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한국인 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 공사의 시공업체는 한국 국적의 건설회사에 한한다는 전례가 없던 방식의 공사 발주가 있었고 당시 한양주택이 공사를 수주했다.
당시 현지언론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 공사의 진행사항을 수시로 보도했다. 많은 사람들을 조마조마하게 했던 이 공사는 회의 시작 수일전 성공적 마무리를 했다. 이들이 한국인이었다.
못난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IMF라고 불리 우는 경제위기가 왔을 때 남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결혼반지, 돌 반지까지 금붙이라는 것은 모두 모아 나라의 위기를 막아내던 국민도 한국인이었다.
월드컵에서의 붉은 악마의 함성은 끝났다. 그러나 한국인의 함성과 꿈☆은 계속되고 있다. 21세기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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