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교 신학부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법과대학에서 이슬람과 유대 법을 비교 연구하는 과목이 있어 잠시 수강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나에게는 호기심이 있었다. 하버드 법과대학 학생들은 어떻게 생긴(?) 사람들일까? 보기만 해도 지성과 논리가 좔좔 흐르며, 빈틈없는 몸가짐과 아무리 공부하여도 지칠 줄 모르는 스터디 머신(공부기계)이 아닐까?
그러나 이런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들은 보스톤 거리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보통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진행되면서 특히 교수님의 질문에 대한 학생들의 대답 속에서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모든 학생들이 한결같이 기초가 튼튼하다는 점이었다.
기초가 튼튼하면 변화하는 상황에 탄력성 있게 대처할 수 있다. 지나치게 변화하자고 아우성 치는 것도, 변화하자는 소리만 들어도 고슴도치 털 세우듯 하는 것도 모두 기초가 부실해서 그렇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교회는 세상이 핼로윈 데이라고 들떠 온갖 잡신 흉내를 내는 날을 종교개혁 기념일로 지킨다. 어떤 의미에서 종교 개혁은 언 핼로윈(Unhalloween) 데이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초 독일에서 시작되어 온 유럽을 휩쓴 종교개혁은 인류 역사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건 중 하나였다. 당시 로마 가톨릭의 비성경적 교권 주의를 교정하자고 외친 젊은 학자 루터의 소리는 종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이루었다. 그러나 막상 종교개혁을 시작한 루터 자신은 새로운 종교나 체제를 창조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한다. 다만 현재의 잘못된 것을 그대로 지적하고 성경의 기초 원리로 돌아가자는 ‘보고’를 위한 양심의 소리였을 뿐이다.
이 시대도 기초가 튼튼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필요로 한다. 예수님의 말씀 중 우리 신앙 생활에 가장 기초되어야 할 가르침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일 것이다. 언뜻 보기에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쉬울 것 같다. 이웃 중에는 꼴 같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당연히 나의 사랑과 존경을 받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교회와 사회의 모습이 지금 같을 수 있을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곳에 근심, 원망, 속상함 등이 공존 할 수 있을까? 나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내가 숨쉬는 호흡이 그 분의 호흡과 척척 맞아야 하지 않을까?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때에, 기초가 튼튼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결심을 새롭게 해 본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순간마다 확인하며 살도록 힘써보고 싶다.
한규삼 <나성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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