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자 한국일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칼럼에 반전론자들의 이중적인 잣대가 불공평하다는 글이 실렸다. 러시아가 벌써 10여년 동안이나 온갖 잔혹한 만행을 거듭하며 현재에도 계속하고 있는 체첸 전쟁, 세르비아가 조직적인 집단강간을 전략의 하나로 사용하며 인종청소를 하던 발칸 반도에서의 전쟁, 더 이전으로 올라가 이라크의 후세인 자신이 이란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하며 150만명의 사상자를 낸 전쟁 등에는 별 말이 없다가 왜 유독 미국이 전쟁을 한다니까 야단이냐는 말이다. 현재의 반전시위는 반전이 아니라 극좌파 단체들의 사주를 받는 반미시위라고 해야 맞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미국을 러시아, 세르비아 또는 이라크와 동일한 반열에 놓고 비교할 수가 있을까. 미국은 75년간 피비린내 나는 굴락 군도의 공산당 실험에서 간신히 살아 나와 비틀거리는 러시아가 아니다. 무자비한 티토의 철권정치 밑에서 숨을 죽이고 견디어야 했던 세르비아도 아니다.
거의 1,000년 동안 타민족의 지배 밑에서 전전하다가 강대국들이 자의로 그려놓은 지도에 짜깁기처럼 맞추어 독립을 한 후 70여년 동안 단 하루도 민주적인 정치의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이라크는 더 더욱이 아니다.
장석정 교수의 말처럼(한국일보 미주판 3월26일자) 미국은 하나의 신념이고 이념이요 이상이고 가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세계 역사에 유례가 없는 특유한 나라이다. 자유와 정의를 존중하고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를 자의로 선택하고 스스로 그 국민이 될 것을 선언한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나라가 미국이다.
일정한 지리적 공간 안에서 피와 땅을 같은 조상에게서 물려받고 문화와 관습을 기반으로 하여 뭉쳐진 민족국가는 그 존재의 이유를 그 구성원들에게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 바로 우리 한 민족이 그 어려운 지정학적 조건 밑에서 온갖 어려움을 견디어 내고도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미국의 특이함은 추상적인 이념과 가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여 나라를 구성하였고 그에 기반한 헌법을 지켜 왔으며 227년 동안 한 번도 그 이상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사회에 있어서 추상적인 이념과 가치의 실현이란 한 개인의 고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폭 넓은 대화와 의견의 절충, 타협과 양보를 통한 국민적 내지 국제적 합의의 도출이 미국이 이제까지 힘들어도 밟아왔던 길이었고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던 대국의 길이었다. 그러한 방식으로 미국은 이제까지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증명해 왔다.
유감스럽게도 이라크 전 의사를 밝힌 이래 미국 행정부가 국내와 국외에서 기울였던 노력은 일방적인 설득이었지 대화의 기도는 아니었다. 국내에서는 반대 의견을 표시하는 이들에게 비애국적이라는 암시가 깃들인 은근한 위협이 시사되었고 국외에서는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적인 선택이 강요되었다.
나는 현재의 반전운동의 일부가 아더 슐레진저 2세의 말대로 유아적인 좌경파(infantile leftist)들의 손에 떨어진 것을 슬프게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 내의, 또 전 세계에 걸친 반전의 여론이 반미의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이념과 가치를 미국이 되찾아주기를 바라는 세계인의 열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미국이라는 이념과 가치는 세계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김철회/법정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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