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이 길어지리라는 전망과 함께 미국의 거리거리가 노란색으로 물들고 있다. 주택가 앞마당, 도로변, 그리고 사람들의 가슴에 노란 리본들이 등장했다.
이번 ‘노란 리본 달기’에는 한인사회도 상당히 적극적이어서 LA,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지의 한인단체들이 리본들을 직접 나눠주며 리본 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9.11 테러 직후 전국이 성조기 물결을 이루었듯 이번에는 노란 리본이 물결을 이룰 조짐이다.
노란 리본은 이라크 전장에서 싸우는 군인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마음의 표시. 아들이나 딸, 남편이나 아내를 전쟁터에 내보내고 가슴 졸이는 파병가족들과도 마음으로 함께 하며 위로한다는 뜻이 포함된다. 지난 91년 걸프전때 한차례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이 전개된 후 12년만에 다시 노란 물결이 퍼지고 있다.
‘노란 리본’이 어떤 경로로 ‘무사귀환’의 상징이 되었는 지는 여러 설이 있다. 그 기원이 멀리 남북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하기는 어렵고, 민간에 흘러 전해오던 이야기가 1950년대부터 구체화하다가 60년대 주로 종교서적을 통해 ‘돌아온 탕자’의 비유와 비슷한 이야기로 정리되어 퍼져 나갔다.
‘노란 리본’이 본격적으로 미국 민담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였다. 71년 뉴욕 포스트에 ‘귀향’이란 제목의 글이 실리고, 다음 해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다시 받아 게재를 하고, 이어 TV 드라마와 팝송으로 소개되면서 미국인들에게 친근한 이야기가 되었다.
출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주된 줄거리는 감옥에서 갓 출옥한 전과자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버스기사 혹은 승객들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몇 년간 멀리서 감옥생활을 한 자신을 아내(혹은 애인, 혹은 가족들)가 여전히 환영한다면 길가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놓기로 약속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그의 동네가 가까워올수록 모두들 가슴을 졸이며 노란 리본이 있기만을 기원했는데 도착해보니 나무 전체가 노란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는 내용이다.
민담, 드라마, 팝송으로 전해지던 ‘노란 리본’이 현실의 거리에 등장한 것은 80년 전후 이란 인질사건 때였다. 테헤란 미대사관 직원들이 억류된 후 브루스 레인젠 대사의 부인이 집 앞마당 떡갈나무에 커다란 노란 리본을 매어놓고 남편을 기다린 사연이 소개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보도가 나가면서 인질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노란 리본을 달기 시작했다.
노란 리본 덕분이었을까. 인질들은 무사히 돌아왔다. 이번 이라크 전장의 병사들도 리본에 담긴 염원에 힘입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권정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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