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초 한인문인협 초청 LA 방문하는 한국계 이민 3세 시인 캐시 송씨
/지금 나보다도 한 살이나 적으셨지/스물 셋, 내 할머니가/한국을 떠났을 때/
/할머니가 떠날 때는/인사도 없이 그냥/대문만 닫고 나오셨다/
/이름을 들은 지도 얼마 안 되는/남자가 기다리는 해변가로/타고 갈 배가 있는 부산항./
/양복점을 지나 부두까지는/아주 먼길이었다/그 섬 해변엔 신랑이 기다렸다/하와이 와이아루아 사탕수수 공장/밖의 막사에 남포불이 켜지면/신부 사진을 불빛에 비추어보는/신방은/사탕수수 줄기를 오가는/나방이 날개로 은은히 빛이 났다/
/할머니가 떠날 때는 무얼 들고 오셨을까?/낯선 신랑을/처음 만났을 때. 그것도/나이가 열 셋이나 더 많은 신랑이/명주 옷고름을/살며시 풀었을 때/천막처럼 생긴 치마 속엔/농부들이 사탕수수를 태우던/넓은 벌판에서 훈훈한 바람이/듬뿍 들어갔을까?
이 시는 미국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한국계 이민 3세 여류시인 캐시 송(47, Cathy Song)씨의 처녀시집 ‘사진 신부’(Picture Bride, 1982)에 수록되어 있는 표제작으로 ‘미주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 사업회’에서 최근 펴낸 같은 제목의 한인문인선집 ‘사진 신부’(월인 출판사)에도 게재되어 있는 작품이다.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면서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 시는 하와이 초기이민 세대 한인들의 생활과 애환을 그려 미주 한인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는 사탕수수 노동자들의 막사에서 후에 아내가 될 처녀의 사진을 보고 있는 작가의 친할아버지와 부산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돕던 친할머니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낯선 땅을 향해 정든 집을 떠나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미 최고의 시인으로 예일대 교수였던 리처드 휴고(작고)는 이 작품에 대해 “캐시 송의 시는 꽃이다. 그 꽃은 아름다운 색감을 갖고 있으며, 감각적이면서 조용하다”고 격찬하면서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예일대에서 수여하는 ‘젊은 시인상’을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의 후손으로 호놀루루에서 태어나 웨슬리 대학(학사)과 보스턴 대학(석사)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작가는 첫 시집을 발표한 이후 미 문단에서 20여년 동안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면서 2번째 시집 ‘창틀 없는 창, 사각형의 빛’(Frameless Windows, Squares of Light, 1988)을 내놓고 이어 ‘스쿨 피겨스’(School Figures, 1994), ‘축복의 땅’(The land of Bliss, 2001) 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작가의 작품들은 미국의 저명한 잡지와 시선집들에 소개되었고, 그녀는 ‘프레데릭 북’ ‘셸리 기념상’ ‘하와이 문학상’ 등을 비롯해 각종 상을 받으면서 미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주 한국문인협회의 송상옥 회장은 “캐시 송씨는 미 주류 문단에 높이 평가를 받고 있는 대표적인 한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호놀루루에 거주하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다음달 초 LA를 방문한다.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이민으로 시작된 한인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미주 한국문인문협가 작가를 초청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5월2일 LA 문화원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해 자작시를 낭독하고 자신의 문학 세계를 들려주는 시간을 갖는다.
<문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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