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15일 있었던 이라크 대통령 선거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사담 후세인이 100%의 지지로 재선되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득표율이 100% 된다는 것은 하나의 희극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라크 국민의 100% 지지를 받은 그 지도자가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도시에서 마다 그의 동상이 파괴되고 머리 부분은 밧줄에 묶인 채 거리로 끌려 다니고 있다. 어떤 시민들은 이 동상 얼굴에 침을 뱉고 신발을 벗어 따귀를 때리기까지 한다. 이같은 행동은 아랍 풍속에서 최고의 모욕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예 중의 정예라고 하던 함무라비 사단은 어디로 갔는지 제대로 싸운 흔적조차 없다. 적어도 후세인이 직접 키운 2만명의 정예군대는 바그다드에서 미군과 혈전을 벌일 줄 알았는데 어이없을 정도로 모두 도망가 버렸다.
이번 전쟁을 ‘지하드’(성전)라고 외치던 후세인과 그의 참모들은 행방이 묘연하다. 대통령이 ‘지하드’를 선언할 정도면 고급 장교들과 친위부대는 수도를 죽음으로 지키는 모양새를 갖추었어야 나라 체면이 서는 일이다. 지도자는 다 피신하고 길에 나뒹구는 시체는 졸병과 시민들뿐이니 전쟁이란 결국 선한 사람만 죽고 악한 사람은 살아남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직이 강해지려면 보스가 부하를 아끼고 밑 사람의 신상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윗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없는데 내가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이유가 없다.
이라크 전쟁이 보여준 것 중의 하나는 독재주의의 군대와 민주주의의 군대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이다. 겉으로는 굉장히 강해 보이지만 형편없이 약한 것이 독재주의 군대이고 헐렁해 보이지만 유사시에는 상상외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 민주주의 군대다. 애국심이란 결국 지켜야 할 선의 가치를 국민이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이 터진 다음날 미군 5명이 포로로 잡혀 TV에 나왔을 때 부시는 “만약 미국 포로들을 제네바 협정에 따라 다루지 않으면 책임자들을 전범으로 기소하겠다”고 경고했었다. 그리고 여군 제시카 일병을 구하기 위해 10여명의 미군 특공대가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목숨을 거는 자세야말로 민주주의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7명의 포로가 풀려났다는 뉴스가 전해졌을 때 온 미국민이 기뻐하며 그들을 ‘HERO’로 치켜세웠다. 사실 길을 잘못 들어 적에게 사로 잡혔다가 풀려난 병사들을 한국군의 경우 영웅 취급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중국군이나 일본군도 마찬가지다. 포로가 된다는 것은 동양개념으로는 일종의 수치다. 적과 끝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으면 모를까 손들고 항복해 적의 포로로 잡힌 것은 수치로 생각한다. 여기에 문화 차이가 있다.
최근 서울을 다녀온 한 교포가 “미국이라는 나라가 국민 한사람 한사람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느꼈다”고 하면서 미국인은 애국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서울 호텔에 체크인을 했더니 다음날 주한 미국대사 명의로 된 편지가 자기 방에 배달되었는데 거기에는 유사시 미국시민이 대사관과 어떻게 연락하고, 집결지는 어디며, 어떻게 철수할 것인가의 상세한 안내가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세금을 왜 내야 하는지 실감했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이 보여준 것은 이밖에도 또 있다. 국민적 훈련이다. 민주주의는 자율적이지만 독재주의는 타율적이다. 바그다드 박물관이 그 고귀한 역사적 유물들을 시민들에게 약탈당했다는 것은 이라크가 과연 민주주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회의를 느끼게 한다. 오랫동안 타율에 의해 길들여진 국민들에게 자율적인 민주주의 정신을 심는다는 것이 전쟁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미국이 곧 알게 될 것이다.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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