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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신문 뉴욕특파원
지난 14일 뉴욕 맨하탄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한국 경제 설명회가 열렸다. 김진표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팀장으로, 반기문 대통령 외교담당보좌관,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이 참석했다.
이날 경제설명회는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해외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경제 및 정치상황, 북한 핵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자리였다. 따라서 과거의 국가 투자홍보(IR)가 재경부 등 경제부처 위주로 이뤄졌던 것과 달리 외교관과 군인이 참석했다.
300여명의 뉴욕 월가 투자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설명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단연 국방부에서 나온 3성 장군 차영구 실장이었다. 그는 별 세개가 달린 군복을 입고 투자자들을 만났다.
한 투자자가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자신이 있는지를 물었다. 반기문 보좌관이 북한이 다자간 대화를 수용해 큰 진전이 이뤄졌다고 운을 떼고 북한이 이라크와 다른 점을 설명했다.
차 실장에게 마이크가 넘어갔다. 그는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두 가지"라고 말했다. 장내에 아연 긴장감이 돌았다. 외교관은 평화적으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데, 군인이 전쟁 가능성을 얘기하는 게 아닌가.
차 실장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한반도 전쟁 조건의 첫째는 우리가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한 억제에 실패했을 때이고, 둘째는 우리가 북한을 침공하는 경우다."그는 한국이 북한보다 월등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도발을 하지 못하며, 한국이 북한을 침공하는 것은 너무 소모적이므로 잘못된 생각이라고 설득했다.
차 실장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0%"라면서 "우리 군을 믿고 한국에 투자하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월가 사람들의 입에서 미소가 나왔다. 차 실장은 민감한 사항인 주한 미군 재배치와 관련해 설명한 후 "더 알고 싶은 게 있는가. 비밀 사항이기 때문에 따로 만나 설명해주겠다"고 조크까지 던졌다. 유창한 영어실력과 자신감 있는 군인 정신이 월가 투자자들을 사로잡았다.
97년 외환 위기 이후 뉴욕 월가에서 여러 차례 경제설명회가 있었다. 하지만 군인과 외교관이 경제관료와 함께 투자 유치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아마 다른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을 것이다. 북한 핵 개발이 한국 경제의 지정학적 리스크로 부상해 있고, 해외 투자자들이 한반도에 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외교관과 군인도 함께 자리를 한데 대해 월가에서는 긍정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차 실장은 한달전에도 반 보좌관, 재경부 관리와 함께 무디스를 찾아가 한국의 군사 대치 현황을 설명하며 한국의 신용등급 하락을 막았다고 한다.
다른 시각도 있다. 상황이 얼마나 다급하면 군인이 나서야 했느냐는 지적이다.
어쨌든 이번 설명회가 월가의 안심과 긍정적 반응을 유도한데 성공했다는 평이다. 한국 정부 고위층이 한달전에 무디스를 방문했을 때 여러 평가위원들이 한반도 상황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이날은 한국 관리들의 말을 수용하는 태도였다는 것이다. 미국이 요구한 다자 회담을 북한이 수용하고 한국 정부가 국내의 반대에도 불구, 이라크에 군인을 파견한 것 등이 무디스의 분위기를 누그려뜨렸다는 해석이다.
아쉬운 것은 이런 행사를 일찍 가졌어야 했다는 점이다. 연초 좌파 정권이 들어선 브라질은 경제 관료들이 돌아가며 2주에 한번씩 뉴욕 월가를 찾아와 브리핑한다. 노동자당 출신의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해 12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방문, 시장 경제 질서를 유지하고, 해외 부채 상환을 약속함으로써 미국의 지지를 얻어냈다.
이라크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불안할 때에도 브라질 국채가 급등하고, 금리가 하락한데는 이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노무현 대통령의 5월 방미를 앞두고 한국 정부가 전면적인 대미 금융외교를 펼치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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