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우리 학과에 학과장으로 새로 부임한 제임스 드폴 교수 덕택에 얼마나 일할 맛이나는지 모른다. 어찌나 다이내믹하게 일을 밀고 나가는지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 속이 다 후련해진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맛이 새록새록 좋아지는 것은 그가 일하는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도 그가 프랑스, 스페인, 중국 등지에서 폭 넓게 활동한 국제파 연출가이면서, 한국과 한국문화라면 나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나로서는 너무나 신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초에 노스리지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파견한 무용원의 공연이 있었다. LA 한국문화원과 협찬하여 드폴 교수가 직접 만들어 낸 자리였다. 전통무용과 모던 댄스 그리고 발레 순으로 엮어진 단 하루만의 공연에 400석이 넘는 객석이 꽉 차고도 관객이 더 밀려오는 바람에 내 동료교수들은 객석 위쪽에 있는 조명실에 올라가서 공연을 관람했을 정도였다.
한국 무용에 대해 전혀 모르던 미국인 교수들과 대학생들은 전통무용인 살풀이가 시작되자 그 정적인 아름다움에 숨을 죽였고, 모던 댄스의 고향인 미국에서 선보인 한국의 모던 댄스 공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세계적인 무용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는 발레단원은 과연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해냈다.
공연이 끝나고 한참 후에도 미국인 학생들이 “그렇게 훌륭한 공연을 보여 주어서 감사하다, 우리도 그런 공연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인사를 해왔다. 별로 한 일도 없었기 때문에 실무적인 일을 모두 맡아 주었던 드폴 교수에게 송구한 마음이 들면서도 어깨가 으쓱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화행사라는 것이 대학의 정규 교과과정에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있지도 않은 예산을 따서 준비하려면 무한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렵게 행사를 마련했어도 관객이 오지 않으면 그림 속의 떡보다도 더 허무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학과장이 나서서 준비를 해주고 모든 교수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를, “400석의 극장을 관객으로 꽉꽉 채우라. 학생들에게 회유, 설득, 권고, 협박,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이 멋진 한국무용단의 공연을 놓치지 않도록 하라”는 엄명을 내렸으니, 금요일인데도 우리 학과에 있는 교수들이 거의 전부 출동을 했고 관객들이 넘치게 와서 결국 몇몇 젊은 교수들은 조명실로 올라가야 했던 것이다.
무용공연이 끝나고 큰 덩치만큼이나 마음도 넉넉한 드폴 교수는 학교 근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서 연회를 준비했다. 그리고 자신은 정작 그 날 뉴욕에 출장을 가게 되어 공연과 리셉션에 불참했다. 대신 낭독해 달라며 자신이 뉴욕 호텔 방에서 작성한 환영인사를 그날 오후 내게 이메일로 보내왔다.
그의 환영인사를 한국말로 번역하던 중에 나는 어째서 드폴 교수가 한국문화에 이렇게 열심인지 단편적이나마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어려서 십 수년 동안 태권도를 배웠다는 것이었다. 태권도를 수련하면서 매일 마음속으로 한국을 방문했었다고 했다. 상상 속의 한국은 신비로운 나라였고 뉴저지의 작은 마을에서 자신이 연습하던 그 똑같은 무술을 한국에서도 누군가 연습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벅찬 감동이 차오르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라면서 예술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문화의 벽을 넘어 다른 배경의 사람들과 정신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임스 드폴 교수는 미국인 학생들이 국제적인 문화에 눈을 뜨고 미국 밖에도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쟁과 테러, 오해와 망상이 이 세상을 어느 때보다도 어둡게 하는 이 시대에 아직도 인류의 역사에 희망을 걸고 예술을 통해 오늘을 일구고 있는 사람 중에 나는 자신있게 내 동료 제임스 드 폴을 꼽아 본다.
김아정
칼스테이트 노스리지 연극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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