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의 결정적 위기가 있었습니다.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지요.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면서 모자 세계 1위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모자’라는 단일 품목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넷(Sonnett Inc.)사의 조병태 회장은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개발 노력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 모자(Sports Cap)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저가의 물품 공세에서 벗어나 고급화에 성공하기까지, 조 회장의 미래 지향적인 사고와 과감한 투자, 추진력 등은 남달랐다.
현재 소넷사는 연 매출이 5,200만달러에 달하고 롱아일랜드 힉스빌의 본사와 조지아주 애틀랜타 지사, 캘리포니아의 산타페 스프링스 지사 외에도 도미니카공화국과 방글라데시에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76년부터 99년까지 ‘토마스 C. 프로모션사’로 불리다 한국의 ‘유풍’과 합병,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했다. 생산직 근로자를 제외한 사무직원 수만해도 미국내 본사와 지사를 합쳐 6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소넷사는 아무 로고도 새겨지지 않은 모자를 모자도매회사에 공급하기도 하고 푸부(Fubu)와 엑코(Ecko), 팻팜(Fhamfarm), 라카웨어(Rocawear) 등 유명 브랜드의 주문 생산을 맡고 있다.
또 뉴욕 양키스와 뉴욕 자이언츠, 뉴욕 닉스 등 프로스포츠 구단과 나이키, 리복 등의 스포츠용품 제품의 라이센스를 획득해 판매하고 있다.
*고급화
모자의 고급화란 얼핏 듣기에 생소하다. 조 회장은 고급화 단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보다 원부자재가 좋아야 한다는 것. 즉 고급 원단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 모자의 모양이 고객에게 편안하고 어울릴 수 있도록 모자의 각도와 챙, 뒤꼭지 등에 대한 디자인을 연구해왔다고 한다.
색상 역시 중요한 요소다. 파란 색 하나에도 수십가지 색상이 있으며 어떤 색을 택할 것인지에 따라 성패가 갈라진다는 것이다.
또 도매회사와의 신뢰를 쌓는 것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고객이 요구하는 샘플 개발을 신속하게 했을 뿐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신뢰를 쌓아왔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면서 고객들은 조 회장의 모자가 가격이 비싸도 주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같은 원칙은 소넷사의 성공 과정에서 피부로 느끼면서 배웠던 것이다.
실제로 조 회장의 모자가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75년 미국에 도미한 뒤 모자 샘플을 들고 무작정 도매업체를 찾아가 납품을 하려했다가 숱한 실패를 맛보았다. 쿼타가 없어 쿼타 품목이 아닌 가죽과 린넨으로 만든 제품을 모자로 가져왔다 참담한 실패를 하기도 했다. 당시 50만달러에 달하는 빚을 지기도 했다.
정식 쿼타를 구입해 재도전한 조 회장은 당시 모자에 로고를 새기는 프린트 방식에 눈을 돌렸다. 프린트가 잘 되는 모자 모양과 원단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당시에는 모자의 각을 세우기 위해 딱딱한 소재의 원단을 사용했는데, 조 회장은 부드러운 원단을 사용하면 프린트를 하기 쉽다는 점에 착안했다.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개발한다는 원칙에서 나온 것이다.
선명한 로고가 새겨지는 프린트된 모자가 히트치면서 82년까지 큰 성공을 거둔다.
또 자수를 새기는 기계인 ‘타지마 기계’가 82년 등장하자 조 회장은 신속하게 그 기계에 맞는 모양의 모자를 만들고 자수가 잘되는 원단을 찾았다.
자수가 된 모자를 찾는 고객들이 줄을 이으면서 조 회장의 모자는 다른 상품보다 가격이 비싸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78년부터 88년까지 조 회장의 모자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90년까지 물량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다.
조 회장의 승승장구는 91년 중국이 개방되고 중국산 제품이 수입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저가의 조잡한 중국산 모자가 점차 미국시장을 잠식해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력관리
"비즈니스의 결론은 사람입니다."
저가의 중국산 모자에 대해 90년대 초반 조 회장은 위기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단순한 고급화로는 점차 품질이 개선되어 가면서 저가로 판매되는 중국산 모자와의 경쟁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최고의 제품을 개발한다는 전략을 세웠다"고 말한다.
그만큼의 투자가 뒤따랐다. 고객이 원하는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개발팀을 조직했다. 또 바느질이나 색상을 위한 디자인팀도 함께 구성했다.
이들은 결국 96년 ‘플렉스핏(Flexfit)’을 개발해냈다. 이 제품은 모자의 사이즈를 뒤에서 조절할 필요없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 98년 특허 출원을 통해 모자 업계의 선두자리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노력, 자금은 엄청났다. 전산화 시스템을 갖추는데만도 80만달러가 투자됐으며 개발팀과 디자인팀도 항상 최고의 대우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인력관리 역시 주먹구구식이 아닌 철저한 능력 위주로 운영했다.
"능력이 있는 사람과 성실한 사람이 있다면 성실한 사람을 고용한다. 성실한 사람들에게 일의 재미를 붙여주고 스스로 창조하게끔 도와주는 인사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는 게 직원 관리의 기본이다.
그 비결은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일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간섭보다는 창의력을 돋우는 식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라는 것. 또 성과에 따른 확실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이는 평소 조 회장이 갖고 있는 ‘시스템과 사람이 회사를 만들어간다’는 소신에 따른 것이
다.
한인 비즈니스들이 일정 수준의 성장 이후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경향이 있다고 안타까워하는 조 회장은 "미래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만이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한다"며 "비즈니스가 성장하는 만큼 그 시스템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주찬 기자> jc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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