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자질을 둘러싸고 말이 많다. 노대통령을 지지했던 안했던 간에 그는 민주정치의 다수 가결 원칙에 따라 한국 국민들이 선택한 지도자이다. 국민들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고 벌써 말이 많은 것은 자가당착일뿐만 아니라 너무 조급한 것 같다.
대통령을 흔히들‘하늘이 낸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말에 들뜨기보다는 통치자의 자질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한비자는 “하나에서 열까지 직접 손을 데려는 자는 위대한 통치자가 될 수 없다. 통치자는 부하의 지혜와 능력으로 승리한다”라며 “도량, 겸허, 의연성 등을 구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토인비는 “지도자는 민중에게 영합하기 위해 자기를 기만해서는 안되며, 자기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민중을 기만해서도 안 된다”라며 “용이, 정의, 상식, 관용, 예의 등을 구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치자에 대한 평가 기준은 “통치자의 측근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마키아벨리는 역설하고 있다.
아무튼 한 나라의 통치자가 되자면 간사한 잔꾀나 부리는 소인배나 권모술수에 능한 협잡꾼이 아니라 큰 뜻과 이상을 가진 큰그릇의 재능겸비의 인재라야 한다는데 석학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민주정치의 본질은 자유와 평등이기 때문에 대화를 위해서는 인간관계가 횡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동양의 유교문화권에서는 모든 것이 종적이며 하향식의 의식이 오랜 세월 동안 몸에 배어내려 왔기 때문에 좀처럼 고쳐지지 않아 민주정치 발전에 지체를 초래하고 있다. 삼강오륜의 뜻을 보아도 모두가 상하관계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친구와의 관계도 ‘장유유서’를 적용하면 결국은 하향식 종적인 관계로 귀착하게 된다. 민주정치는 대화의 정치인데도 아랫것들이 말이 많으면 승진에 불리하거나 퇴출당하기 때문에 ‘아랫사람은 입은 있으나 말이 없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해있다.
따라서 상하관계가 엄격한 유교 문화권에서 민주정치를 하자면 무엇보다 통치자나 국민이나 할 것 없이 우선 사람이 민주화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은 새로운 세계관 속에서 성장한 신세대의 급진 좌경세력과 낡은 세계관속에서 성장한 구세대의 보수 우경세력으로 나눠져 있는 것으로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 두 세력 사이의 대립과 투쟁은 만성적인 정치 불안과 비민주적 변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정치학계 원로인 윤형섭 박사가 저술한 한국 정치론에는 정곡을 찌르는 인간 민주화의 7대 덕목이 역설되어 있다. 즉 첫째 겸허, 둘째 양보, 셋째 상대주의, 넷째 다원적 사고, 다섯째 관용, 여섯째 인내력, 일곱째 주인 및 책임의식 등이다. 이중 몇 가지만 설명을 하고자 한다.
유능한 사람을 제쳐놓고 내가 이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은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리고 그 자리가 중요하면 중요할 수록 국가와 사회에 피해를 끼치고 있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민주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인데 사생결단하면 잘하고 타협하면 ‘사쿠라’로 매도하는 흑백논리의 양극 문화 속에서는 민주정치가 성립될 수 없다. ‘반대’가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를 용납 못하는 심성’이 국민을 분열케 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만이 옳다는 독선을 버려야 한다.
극치의 사리욕으로 부패된 구세대의 원로가 후진양성에 대한 자책은 고사하고 신세대의 통치자에게 ‘바담풍’으로 가르쳐 놓고 ‘바람풍’하지 않는다고 꾸짖는다면, 도둑이 자식보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격이 아니겠는가.
R M 맥키버 교수는 “민주정치는 영원한 미완성품”이라고 했다. 대다수 국민들은 급진적이며 피를 흘리는 프랑스식의 민주발전을 원치 않고 점진적이며 피를 흘리지 않은 영국식 민주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대통령은 통치하되 군림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음도 기억하자.
박종식/예비역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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