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캠프를 향해 일직선으로 철수하던 일행들이 조난자를 구출하기 위해 전진하고 있는 모습이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였다.이틀간 내린 대설로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헤쳐 나가기 때문에 속도가 너무 늦어 마치 제자
리걸음을 하는 것 같았다.
초조와 불안감으로 구조상황을 주시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마침내 맨 앞에 달려가던 쉘퍼 1명이 조난자 옆으로 다가서는 것이 보였다. 그때서야 안심이 되어 ‘아 살았구나’ 하는 순간 반가워서 조난자와 포옹이라도 할 줄 알았던 쉘퍼가 갑자기 물러서는 것이 아닌가.혹시 조난자가 죽어 뒤로 물러선 것이 아닌가 하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러나 잠시 후 쉘퍼가 조난자에 다시 다가 가더니 조난자와 껴 앉는 모습이 보였다.순간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뛸 뜻이 기뻤다.이어 무전기를 휴대하고 있던 서충길 대원이 조난자 앞에 가더니 보고를 하는데 너무 숨이
차고 흥분해서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필자는 똑똑하게 보고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예섭이가 살았습니다’라는 서대원의 말소리가 들렸다.
’뭐야? 예섭이라고?. 필자는 또 한번 놀랐다. 대원 중 나이도 가장 어렸고 경험이 부족한 그가 어떻게 살았단 말인가. 이런 기적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중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먹을 것도 없이 어떻게 버텼을까. 더욱이 잠자다 당해 등산화도 신지 않은 상태였다.신발을 가져다 달라는 그의 요청에 필자는 뜨거운 차와 신발을 짊어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간밤의 폭설이 어찌나 심했던지 이미 철수 부대가 지나갔음에도 불구, 제 2캠프 바로 밑에 고정시킨 밧줄이 눈에 묻혀 보이지 않기에 몇 번이나 굴러 떨어지면서 간신히 절벽을 내려와 정신없이 달렸다. 전력을 다해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간 지 1시간 30분만에 눈 위에 힘없이 주저앉은 동생 예섭이와 만날 수 있었다. 터지고 일그러진 얼굴에 심하게 다쳐 꼼짝 못하고 있는 그를 보자 ‘아 살았구나, 살았어’라고 외치며 그를 껴앉고 한없이 울었다.
필자를 보자 그는 ‘형님 쉘퍼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마세요라고 첫마디를 던졌다.15명 모두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더니 ‘형님, 호섭이 형하고 오세근 대원은 고소에서 강했기에 죽지 않았을 터이니 빨리 구조대를 보내 살려주세요’라고 말했다.그리고 자신이 마지막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그곳을 파면 천막에 있던 카메라, 촬영기 등 고급 기자재가 나올테니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자기 목숨 하나 살리기도 어려운 형편에 기자재가 다 무슨 소용인가.그러나 그를 안정시키기 위해 곧 가서 파올 터이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으나 그는 눈사태로 떨어질 때 골절된 늑골의 통증으로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점점 혼수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필자는 그를 끌어안은 채 ‘안돼, 죽으면 안돼’라고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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