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지붕 전설의 히말라야 마나스루 폭풍설 속에 부하 대원들의 혼이 방황하고 있음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다.폭설에 묻히고 돌풍에 처참히 찢긴 텐트조차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다.
설욕의 날을 고대한 지 4년 마침내 필자가 이끄는 제3차 마나스루 등반대가 장도에 오른 것은 1976년 3월이었다.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김예섭 대원만은 간신히 구출했지만 나머지 16명을 잃고 온 후유증은 너무 컸고 이를 극복하려는 시련 또한 가혹, 4년이란 세월이 지나 다시 도전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숙명적인 산이 되고만 마나스루(해발 8,152m). 눈을 감고도 지형지물을 그릴 수 있는 익숙한 산이 되고 말았다. 정상을 바로 눈앞에 남겨 놓고 제트 기류에 고 김기섭 대원을 잃었고 깊은 밤 천막 친 곳이 무너져 내림으로써 자고 있던 16명을 또다시 산에 묻었던 것이다.
두 번다 기상악화로 실패했기에 날씨만 좋아지면 성공에 자신이 있었다. 변화무쌍한 히말라야의 기상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어 이번에 또 몇 명이 못 돌아올 지 혹은 필자가 못 돌아올 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등반대였다.
비장한 각오로 재도전 길에 오른 우리 등반대가 마의 제 캠프에 도착한 것은 4월22일이었다. 2차 등반대 바로 이곳에서 잠자던 대원 15명을 잃은 곳이며 필자 역시 그들과 4일이나 같이 지내다 지원대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당했기에 필자는 살아날 수 있었다.
그래서 재정비를 갖춰 오늘 다시 찾아와 보니 필자 자신이 직접 설치했던 천막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그 많던 대원들 또한 어디로 갔는 지 오직 무심한 풍설만이 쓸쓸히 필자를 맞아주었던 것이다.
가장 난코스인 표고차 400 미터의 ‘피나클’ 빙벽에 휙스로프가 전부 설치됨으로써 정상 바로 밑 해발 7,700m에 제 5캠프를 설치할 수 있었다.5월4일 4캠프의 새벽 기온은 영하 28도 강풍이 불고 있어 체감온도는 그보다 더 추웠다.
필자는 이날 중 쉘퍼 1명을 데리고 5캠프를 경유 정상에 오르기도 하고 3명의 쉘퍼의 지원을 받으며 4 캠프를 출발했다. 출발에 앞서 서충길 부대장에게 만약 필자가 잘못되면 2차 정상등정대를 이끌고 오도록 지시했다.
빙벽을 기어 오른 지 3시간이 지날 무렵부터 눈보라가 밀려들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폭설로 변하고 마는 것이었다. 기상악화 속에서도 전진을 계속 간신히 빙벽을 넘어 능선 위에 있는 제 5 캠프에 도달했을 때는 날씨는 미친 듯이 날뛰며 그 무서운 마나스루 특유의 폭풍설로 변했고 여기에 수시로 밀려드는 제트 기류와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강풍, 그리고 총알 같이 날아드는 매서운 돌풍에 전원 꼼짝못하고 엎드려 있어야만 했다.
1차 등반 때 고 김기섭 대원이 이런 제트 기류에 휘말려 조난 당했다.이것서부터 정상까지는 밋밋한 능선이라 4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인데 이 지긋지긋하고 악마같은 몹쓸 놈의 날씨에 휘말려 정상을 바로 눈앞에 두고 또 당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영하 28도의 혹한에 산소가 평지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해발 7,700m의 고지에서는 위급한 상황이기에 일단 4 캠프로 피신시키기로 했다. 다행히 4캠프까지는 전부 휙스로프가 설치돼 있어 짙은 가스와 폭풍설로 앞이 보이지 않았으나 철수가 가능했다.
그러나 5명이 한 줄의 로프에 매달려 내려오다 보니 절벽에 걸쳐 있던 부서진 바위돌들을 건드려 떨어지는 돌덩어리에 얻어맞고 돌풍의 중심에 맞으면 우리 몸은 암벽이나 빙벽에 부딪쳐 온 몸이 성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얼마를 내려오는데 갑자기 물체에 맞는 충격을 받는 동시에 눈앞이 보이지 않고 손과 발에 힘이 빠지면서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이었다.이런 절벽에서 손과 발을 못쓰면 살아남을 수 없기에 로프를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점점 힘이 빠져 쓰러지는 것이었다. 아,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하며 필자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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