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미국)의 독주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골프황제’가 된 비제이 싱(41.피지)은 ‘잡초’에서 ‘낙락장송’으로 우뚝 선 인간승리의 표본이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피지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골프를 배웠고 프로 선수가 된 다음에도 세계 골프의 변방을 전전하다 30세가 되어서야 겨우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데뷔했던 것.
1982년 프로 데뷔 이후 싱의 선수 생활은 한마디로 비참했다.
’빅리그’인 PGA나 유럽프로골프투어에서 실패한 ‘낙오자’들이 주로 모여드는 아시아프로골프투어에 발을 디뎠지만 대회 출전 경비가 없어 아는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더구나 경기 중 속임수를 썼다는 의심을 받아 투어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고 이 사건은 본인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싱의 경력에 지울 수 없는 흠집으로 남아있다.
그러던 싱의 골프 인생은 84년 말레이시아PGA챔피언십에서 프로 첫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서서히 볕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싱의 생활은 여전히 쪼들렸고 삶은 고단함 그 자체였다.
좀 더 나은 여건을 찾아 아프리카까지 흘러간 싱은 88년 나이지리아오픈에서 우승했고 89년 유럽프로골프투어에 입성, 서서히 세계 골프의 중심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스웨덴PGA챔피언십, 볼보오픈, 엘보스크오픈, 킹하산트로피, 안달루시아마스터스, 볼보저먼오픈 등 유럽투어에서 우승컵이 쌓여가면서 자신감을 가진 싱은 93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PGA 투어에 발을 디뎠다.
뷰익클래식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컵을 안은 싱은 그해 상금랭킹 19위에 올라 신인왕에 뽑히는 기쁨까지 누렸다.
하지만 2000년 마스터스 그린재킷을 입을 때까지 싱은 수많은 PGA 투어 선수 가운데 한명이었을 뿐 ‘넘버원’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특히 피부색과 인구가 80만명이 불과한 작은 섬나라 출신이라는 사실, 그리고 과묵하면서도 때로는 공격적인 언행 등으로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싱은 오로지 실력만으로 이겨내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도 싱에게 따라 다니는 별명은 ‘연습벌레’.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연습장에서 살다시피하는 싱에게 골프전문기자들은 ‘워크홀릭’이라는 수식어를 서슴없이 사용한다.
마스터스 우승으로 비로소 ‘비주류’의 설움에서 벗어나 ‘톱랭커’로 자리 잡은 싱은 그러나 장타력과 정교한 아이언샷에 비해 쇼트 퍼트 불안이라는 치명적인 약점때문에 ‘1인자로서는 부족하다’는 인색한 평가를 한동안 감수해야 했다.
다시 각오를 다진 싱이 선택한 것은 현재까지 쓰고 있는 밸리퍼터였다.
배꼽에 퍼터 그립을 대고 스트로크를 하는 밸리퍼터를 손에 쥔 2001년부터 싱의 경기력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평균 퍼트 개수도 향상됐지만 올해 PGA 투어 선수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는 아이언샷 그린 적중률(72.4%)을 뒷받침하는 버디 사냥 능력이 크게 나아졌다.
190㎝가 넘는 큰 키에서 뿜어나오는 시원한 장타와 컴퓨터처럼 정확한 아이언샷이 장기인 싱으로서는 호랑이에 날개까지 단 셈이었다.
이런 ‘환골탈태’를 바탕으로 싱은 작년 우즈의 상금왕 5연패를 저지하면서 PGA투어 상금랭킹 1위를 차지했고 올해는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을 포함해 6승을 쓸어담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지난해 내가 상금왕이니 최고선수 아니냐며 ‘올해의 선수상’에 욕심을 냈지만 우즈에게 양보해야 했던 싱은 올해는 그토록 바라던 ‘올해의 선수상’을 사실상 예약, 이제는 명실상부한 새로운 ‘골프황제’ 시대를 열 전망이다.
PGA 투어 본부가 있는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에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으며 아내, 그리고 아들 2명 등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투어 선수 가운데 연습벌레로 쌍벽을 이루는 최경주(34.슈페리어.테일러메이드)와 유난히 친해 이런 저런 조언을 많이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지 인구의 46%를 차지하는 인도인인 싱의 성(Singh)은 힌두어로 ‘승리(Victory)’라는 뜻이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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