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누드 비치가 생긴다고 한다. 옷을 걸치지 않고 발가벗은 몸으로 남녀들이 해변가를 거닐거나 모래 위에서 뒹구는 모습이 연상된다.
얼마 전 캐리비안 섬들을 여객선으로 도는 휴가를 간 일이 있었다. 그 때 세인트 마튼이라는 섬에도 들렸었다. 거기에 오리엔트 비치라고 하는 누드 비치가 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찾아 갔었다. 도착해 보니 모래사장에는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몇 쌍의 나체 남녀가 바다를 향하고 앉아있을 뿐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드 비치에 가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이것은 섹스와는 아무 관계도 없고 굴레에서 벗어나는 해방감과 자유감을 즐기는 데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옷을 입어야 되는가? 누드 비치 이외의 장소에서 발가벗고 다니면 짐승같은 인간이라고 하고 미친 인간이라고 하여 경찰에 잡혀가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이 된다.
이 문제는 인류학적, 고고학적, 철학적인 문제로 이런 면을 여기에서 다루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섹스라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어서 타인이 안 보이는 곳에서 해야 하고 신체적으로는 부끄러운 부분, 즉 치부(恥部)라고 하여 가리고 다녀야 된다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숨기고 가리고 다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나체 위에 숨겨놓는 자기의 ‘속마음’이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 정신분석가로 몇 십년을 일해 왔고 또 하나의 인간으로 그보다 더 오래 살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거침없이 자기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발가벗겨서 내보이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아마도 부끄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가 보다. 만일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성인 군자도 없을 것이다. 그 속에는 법과 윤리, 도덕을 어기는 탐욕, 명예욕, 울화, 사기, 절도, 강도, 강간, 살인 등의 생각이 시시각각으로 행렬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속마음들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들이 성인군자이다.
사람들은 또 이러한 자기의 속마음은 남에게 뿐 아니라 자기 자신한테도 숨기려 하면서 남의 속마음은 샅샅이 알고 싶어하는 버릇이 있다.
불교에서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말을 한다. 이렇게 부끄럽게 느껴지게 하는 생각들을 무명(無明)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고, 이 무명에 가려있는 깨끗하고 참된 마음을 보고 그대로 실천한다면 바로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정신 분석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무명스런 마음을 ‘노이로제적 마음’이라고 하고 이것들을 제거하고 그 뒤에 가려져 있는 참된 자아를 보고 실천하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자기 속마음을 내보이는 것이 자기 몸의 치부를 노출하는 것과 같아서는 안된다. 언제 어디서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마음을 항상 가지고 살아야 된다.
김병석
정신과 전문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