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전 기독교 방송국으로 걸어가는데 맨해턴 한 가운데서 난데없이 내 반대쪽에서 내려오던 차가 서더니 훤칠하게 생긴 젊은이가 뛰어내리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아이를 낳았고 백일잔치를 한다며 부부가 아기와 함께 나를 만나러 왔던 청년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2년 전 뉴욕 업스테이트의 한 교도소에서였다. 밤송이 머리에 얼굴은 검게 그을린, 눈이 부리부리하고 이목구비가 멋진, 키가 크고 잘 생긴 소년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 참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낙천적으로 보였던 그 소년은 수감되어 있던 동안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만 의지하던 엄마가 가장이 되어 동생과 홀로 힘들게 버티고 사는 것을 교도소 안에서 겪어야 했다. 그가 하루하루 자책과 뼈를 깎는 반성으로 그 힘든 시간들을 보내는 것을 나는 줄곧 지켜보았다.
그는 자신의 청소년기 단 한번의 실수로 이렇게 가족에게 다시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특히 엄마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서 늘 마음이 아파했다.
그와는 참으로 많은 추억이 있었다. 17명의 한인 재소자들과 함께 있던 그 곳에 아주 특별한 허락을 교도국으로부터 받아 2주에 한번 그들의 식사를 준비해 갈 수 있었던 3년의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즐거운 추억이었다.
아이들이 먹을 갈비, 돼지고기, 상추쌈, 고추, 라면, 과자, 밥 등을 그것도 장정 17명, 그리고 한국음식 못 먹어 한 사람이 3~4인분을 끄떡없이 먹어치우는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바리바리 싸 가는 음식은 어찌나 부피가 큰지 가관이었다. 종종 교도관들이 도와주었기에 가능했지 도저히 나 혼자로서는 가져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 아이들이 “이렇게 먹다 죽으면 행복할 거 같아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세상에 없을 것 같아요” 하며 먹어대는 그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것은 희소가치의 법칙, 즉 희귀했던 상황에서 만들어졌던 환상적인 맛의 가치였다. 그는 이런 만남 속의 한 사람이었고 출감 날 식구들과 연락이 안돼 내가 그를 도울 수 있었던 기억, 그리고 4년 전 결혼한다고 해서 결혼식장에 갔더니 많은 사람들 앞에 밝게 웃으며 내게 달려와 덥석 안아주던 청년, 그리고 아빠가 된 그가 맨해턴 한 가운데서 넙죽 인사를 하며 나를 반기는 것이다.
어느 만남이 이렇게 격의 없고 반갑고 기쁠 수 있을까. 그 근처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해서 들러보니 그는 손과 얼굴에 먼지를 쓰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제 꼴이 이래요. 이전의 스타일은 다 없어지고 거지 됐어요”라며 웃지만 내게 보이는 그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가장이 되어 쓰러질 때까지 일하는 그의 성실한 자세가 그랬고 아내와 자식이 예뻐 그들을 챙기느라 예전의 스타일을 버리고 후줄근하게 다니는 그 모습이 내겐 너무나 아름다웠다.
갱 동생들을 백그라운드 삼아 폼잡고 다니던 그가 향수 대신 땀 냄새를 풍기며 맨해턴을 누빈다. 그런 그에게 ‘누구보다 아름다운 그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이상숙
유스 앤 패밀리 포커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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