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수필가/교육가)
우리나라 4,000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 가장 자랑할만한 가치관의 덕목을 말하라면 나는 서슴없
이 ‘선비정신’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나라 600여년을 면면히 흘러 내려왔고, 조선왕조 500년 이상 국가 체제를 유지하게 했던
이 선비정신을 흔히 영국의 젠틀맨십, 미국의 프론티어정신, 일본의 무사정신 보다 우월하다고
들 주장한다. 전통사회의 선비는 그 사회의 양심이요, 지성이며 인격의 기준이고 생명의 원기였다.
이 선비사상의 청백(淸白), 근검(勤儉), 후덕(厚德), 경효(敬孝), 인의(仁義)의 다섯가지 덕목 가운데 으뜸은 역시 청백과 근검이고 조선의 청백리(淸白吏)가 배출된 유래이기도 하다.<산수간 바위 아래 띠집을 짓노라 하니/그 모른 남들은 웃는다 한다마는/어리고 향암의 뜻에는
내 분인가 하노라//보리밥 풋나물을 알마초 먹은 후에/바휫 긋 물가의 슬카지 노니노라/그 나문 녀나믄 일이랴 부를 줄이 이시랴>
우리가 잘 아는 고산 윤선도의 ‘산중신곡’의 ‘만흥’ 6수 중의 2수이다. 이 유명한 시에서 우리는 청백과 근검에 기초한 ‘안분지족’과 ‘안빈낙도’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데 그 말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평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켜 만족함을 앎’과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지냄’이 두 유의어의 뜻풀이인데, 이 뜻풀이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가 공통 분모임을 알 수 있다. 즉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킨다는 것이 우리 선인들의
지고한 생활 철학이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선인들에게 생명력으로 면면히 이어오는 이 아름답고 귀한 선비사상과 안분지족의 생활철학이 잘 지켜지지 못하고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회의 산업화, 과학문명의 발달, 물질 만능주의가 되어버린 세태만을 탓하기에는 너무 설명이 부족함을 느낀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전세계와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놀라운 사건들이 우리의 가슴을 조이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다.
2005년의 마지막 달, 을유년의 끝자락에 서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쟁과 뉴욕, 뉴저지 지역을 휩쓸고 지나간 모기지 금융대출 사기사건의 두 스캔들을 머리속에 떠올리며 밤마다 그토록 가슴 아파했던 것은 웬일일까.본시 황우석 교수는 농촌 출신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고, 우직하고 근면한 과학자였다고 한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끝없는 욕망으로 내다 몰았는지 알 수 없다. 황교수나 금융사기 대출사건을 저질렀던 장본인들이 우리 선인들의 선비사상을, 아니 그 당시 선비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면, 또 그들이 우리 선인들이 지녔던 안분지족의 지혜를 본받고 살았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2006년 병술년 새해 아침, 정월 초하루가 주일이기에 교회에 다녀와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자 손녀들의 세배를 받으면서 아이들에게 준 말은 “올 한 해 건강하여라. 그리고 나의 특별 주문이다. 제발 안분지족의 지혜를 잊지 말아라”였다.그렇다. 내가 늘 부르짖는 ‘진인사 대천명’도 좋고 ‘역지사지’도 좋지만 올해 우리집 신년 덕담과 화두는 아무래도 ‘안분지족’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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