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조상들, 일본영사 보호 배척하고 ‘한국인’ 주창
당시 미국정부도 일본정부와 분리해 국민회 인정
리처드 김 교수 UW 강연회
20세기초 미국으로 이민온 한인들은 한일합방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과의 차별화를 강조하며 이를 바탕으로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고 리처드 김 교수(UC-데이비스, 역사학)가 강조했다.
김 교수는 12일 한인이민사 편찬회(KAHS)가 워싱턴대학(UW) 커뮤니케이션스홀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이 같이 말하고 1913년 남가주 농촌마을 헤밋(Hemit)으로 이주해온 한인들이 일본인 배척운동을 벌이던 현지 백인들에 의해 축출당한 사건의 해결과정을 그 예로 들었다.
당시 한일합방 조약에 의거해 일본영사가 다른 지역으로 쫓겨난 한인들을 면담, 미국정부와 교섭해 배상을 받아주겠다고 제의했으나피해를 입은 한인들은 이를 거절하고 한인단체를 통해 직접 문제를 해결했다고 김교수는 설명했다.
한인회에 해당되는 당시의 대한인국민회(KNA)의 이대위 북미지역총회장은 국무장관에게 전보를 보내“현재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한일합방전 한국을 떠난 이들로 한일합방에 반대하고 일본정부의 간섭을 원치않으니 한인문제는 한인사회와 교섭하기 바란다”고 통보했다.
당시 윌리엄 J. 브라이언 국무장관은 KNA의 요구를 수용, 재미한인과 관계되는 일은 공사를 막론하고 일본정부를 통하지 않고 한인사회를 통해 교섭하겠다는 방침을 공식 발표했다.
김교수는 이 같은 예를 설명하면서 당시 미주한인의 대정부 창구역할을 담당했던 KNA는 한인사회의 중심축으로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일합방후 중국으로 망명했던 우국인사 541명이
여권도 없이 KNA의 보증만으로 망명 유학생 자격으로 미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고 김교수는 설명했다. 미국이민 초기에는 한인들이 대부분 하와이에 거주, 미국정부에 대한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한 김 교수는 미주한인들은 자금지원과 함께 안창호를 상해에 대표로 파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웨스턴워싱턴대학의 김형찬 명예교수, 이익환 KAHS 전회장 등 한인사회 인사들과 UW 잭슨스쿨 교수 및 학생 등 50여명이 참석해 큰 관심을 나타냈다.
KAHS 신임회장인 정문호 교수(UW, 역사학)는 편찬회 부활 기념행사로 이번 세미나를 개최했다며 “그동안의 동면에서 깨어나 앞으로 활발한 이민사 연구활동을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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