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우린 그런 것 몰라”
커뮤니티 지도자들 화합 적극 노력
문제발생 조짐 보이면 초기에 진화
언론 “지구촌 평화 공식 보여 줘”
B68번 버스노선이 지나는 뉴욕 브루클린의 코니 아일랜드 애비뉴 5마일 상업지역 구간. 이곳은 가히 ‘민족의 용광로’라 할 만큼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살아 가는 공간이다. 웨스트 인디언, 라티노, 파키스탄인, 인도인, 정통 유대인, 중국이, 러시안인, 이스라엘인, 우크라이나인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민족이 뒤섞여 살아 가는 이곳이지만 민족간 갈등을 거의 찾아 볼수 없을 정도로 주민들은 밀접히, 그리고 평화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세계 다른 곳에서는 서로 적대적으로 살아 가고 있는 민족들이 이곳에서는 사이좋은 이웃이 된다.
코니 아일랜드 애비뉴의 한 이발소. 영어와 러시아어, 이디시어, 우르두어 모두 통한다는 사인이 걸려 있다.
거리의 상점 간판들만 해도 얼마나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인지가 확연하다. 보스를 타고 가가 보면 영어로 시작되던 간판이 아랍어로 바뀌더니 곧 헤브리어로, 그리고는 중국어로 바뀌고 이어 키릴문자가 눈에 들어 온다. 코니 아일랜드 애비뉴는 물론 파리의 생젤리제가 아니다. 시끄럽고 붐비며 화려하지도 않다. 카 워시, 자동차 바디샵, 전자제품상, 그리고 전화카드 판매업소, 송금업소, 할인 여행사, 보험 등 소매상들이 줄줄이 눈에 들어 온다. 월그린과 스테이플스 같은 대형 소매 체인이 간혹 있지만 이름 있는 업소를 찾아보기란 힘들다. ‘A/A 뉴욕가이드’에 조차 이곳에 대한 언급은 없다. “민족적 다양성 외에는 건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브루클린 향토 사학자들의 설명이다.
뉴욕은 자동차 사고, 아주 사소한 일, 싸움 등 어떤 것도 시위나 보이콧, 또는 폭동 등 큰일로 확산될 수 폭발성을 지닌 곳이다. 하지만 코니 아일랜드 애비뉴에서는 다르다.
지난해 핼로윈을 앞두고 코니 아일랜드 애비뉴의 한 던킨 도너츠 업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던 24세의 파키스탄 청년이 정통 유대인 청소년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청소년들은 이 청년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손가락에 끼우는 쇳조각으로 코를 부러뜨리고 바닥에 눕힌 후 발로 차는 등 심한 폭행을 가했다. 브루클린은 호전적인 ‘유대인 방어연맹’이 탄생한 지역. 따라서 이 사건은 자칫 갈등으로 확산되기 십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 이곳에 출동한 언론들을 맞은 것은 이 지역 이슬람과 유대인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언론에 “폭행사건은 통탄할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미디어나 거리에서 해결되어서는 안 되며 법정에서 해결돼야 한다. 이번 사건은 일상이 아닌 일탈로, 민족들간의 긴장이 나타난 것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아메리칸 이슬람 관계 위원회’는 이 문제를 이슈화 시키려 했지만 이 지역의 이슬람 관계자들이 이를 거부했다.
사건 진화에 앞장 섰던 파키스탄 커뮤니티 지도자 모하메드 라즈비는 이렇게 말한다. “전국 조직들은 그들의 아젠다를 갖고 있다. 그들은 이런 사건을 확대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 커뮤니티내 민족간 관계는 대단히 긴밀하다. 우리는 불꽃이 화재로 번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화합이 이 지역에서 가능한데 대해 커뮤니티 관계자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브루클린 칼리지 사회학과의 제롬 크라스 교수는 “주민들은 교육, 경제적 번영, 안전, 괜찮은 거주지 등 자신들이 미국에 건너 온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존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반면 파키스탄 커뮤니티 지도자인 라지브는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만날 기회가 없었던 타 민족들을 직접 만나게 되면서 서로간에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고 진단하고 “화합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화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본다”고 말한다.
미국정부의 해외공보 방송인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는 코니 아일랜드 애비뉴의 다양한 민족이 잘 어울려 살아가는데서 ‘지구상의 평화를 위한 공식’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다양한 민족 의상을 입은 주민들이 코니 아일랜드 애비뉴를 걷고 있다.
<1세 이민자 절반 넘어 영어보다 모국어 더 사용>
코니 아일랜드 애비뉴 주민 8만7,000여명중 해외에서 태어난 사람은 51%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뉴욕 전체의 35%, 그리고 미국 전체의 11%와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높은 1세 이민자 비율이다.
또 집에서 영어 외 언어를 사용하는 비율 또한 61.8%로 뉴욕의 47.5%, 미 전체 17.9%보다 월등히 높다.
그런 까닭에 인종적 다양성이 여과없이 그대로 나타나는데도 주민들은 ‘공존의 미덕’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공존의 미덕을 깨닫는데 코니 아일랜드 애비뉴를 관통하며 지나는 B68노선 버스가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지역 관계자들의 설명.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B68노선 버스에 함께 타고 갈 수 밖에 없다는 것.
물론 같은 버스를 타야 한다는 사실이 실질적으로 인종화합에 얼마나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실증적 연구는 없지만 상징적 의미는 지니고 있는 듯 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