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상실 노모 봉양하는 ‘현대판 심청’ 공 아그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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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산지 15년째.
좋은 여행 시켜드린다고 한국에 계신 어머니를 초대했다가 사고를 당한 건 2년 전의 일이다.
얼음길에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만 안났더라도 온가족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을 그날의 여행은 지독한 악몽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날 사고로 모친은 실명을 하고 말았다. 영원히 시력을 되찾을 수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진단과 함께.
“엄마 바로 앞에 다섯 계단 있어요. 하나, 둘, 셋…”
공 아그네스(44세, 앤티옥 거주)씨의 입은 앞 못 보는 노모의 눈이 되고, 그녀의 팔은 노모의 지팡이가 되어 하루를 시작한다.
화장실 갈 때, 밥 먹을 때, 잠자러 갈 때, 거의 온종일 딸에 의존해야 하는 칠십세 노모 고 이레네 씨는 딸의 팔을 잡는 순간 둘이 ‘한 몸’이 된 것 처럼 기분 좋은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우리 젊을 땐 효도하며 어른을 공경하는 게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한테 너무 소홀하다는 걸 느껴요. 자식 낳으면 부모가 될 텐데 자신이 부모가 될 거라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효성 지극하고 착한 우리 딸을 보면 뿌듯하죠.” 게다가 중국인 사위는 비록 말은 안통해도 열 번이면 열 번 모두 싫은 내색 한번 안하고 시중을 든다며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는 사위가 특히 사랑스럽단다.
“오랫동안 형편이 좋지 않아 엄마를 모시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어요. 미국에 산지 13년 만에 효도도 할 겸 초청했는데 사고가 나고 말았죠.” 그때의 일이 자신의 잘못인 양 죄송하기만 한 공 씨는 한국에 있는 형제들이 바빠 앞 못 보는 모친을 모시기 힘들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겠다는 마음이라 본인이 모시고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공 씨는 10년간 해온 은행일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모친 봉양에 여념이 없다.
“엄마가 눈을 잃지 않았다면 몸은 편하게 사셨을 터이지만 내가 이렇게 엄마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은 훨씬 더 적었을 것”이라는 공 씨는 용기 있게 살아가는 어머니께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비록 어머니는 시력을 잃었지만 모녀의 정을 확인하고 다질 수 있는 더 큰 삶의 기회를 얻은 것 아니겠느냐며 공 씨는 좌절 대신 애써 희망을 본다.
“엄마가 편하시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효녀라고요?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자신은 아직도 멀었다며 손을 내젓는 공 씨는 어머니가 고생하신 만큼 이제는 더 평안하게 사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란다.
2년간 한결 같은 마음으로 묵묵히 모친을 봉양해온 공 씨는 효도라는 게 바쁘다 보면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냐며 닥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겸손한 그녀 앞에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도 무색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녀는 “하느님께서 다 뜻이 있어서 만드신 일이라 생각해요. 저도 엄마도 그 길을 따라 하느님 뜻대로 살 거예요”라고 다짐한다. 그래서 마음의 불평도 없다.
그녀는“15, 20년만에 시력을 되찾았는 기적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열심히 기도한다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리라 믿는다.
점점 효가 사라지고 있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모친을 향한 그녀의 사모곡은 아름답기만 하다.
<권선주 기자> agatha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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