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리 ‘뒷모습’ 전문
어떤 스님이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목살 두어 근 사들고
비닐봉지 흔들며 간다
스님의 뒷목이 발그럼하다
바지 바깥으로 생리혈 비친 때처럼
무안해진 건 나였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분홍색 몸을 가진 것
어쩌면 우리가 서로 만났을까
속세라는 석쇠 위에서 몇 차례 돌아누울
붉은 살들
누구에겐가
한 끼 허벅진 식사라도 된다면
기름 냄새 피울 저 물컹한 부위는
나에게도 있다
뒷모습은 남의 것이라지만,
너무 참혹할까 봐 뒤에 두었겠지만,
누군가 내 뒷모습 본다면
역시 분홍색으로 읽을 것이다
해답은 뒤에 있다
돼지고기를 사가는 스님의 뒷목에서 ‘발그럼’하게 떠오르는 빛깔. 그것은 비단 스님의 부끄러움만은 아니다. 나의 부끄러움이자 속세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부끄러움이다. 너무 참혹해서 내게는 안 보여주려고 뒤에만 두게 하였던 부끄러움. 이러한 배려를 진짜로 신께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뒷모습이 거짓말을 못하는 건 사실이다. 얼굴처럼 가면을 쓸 수도 없고, 고스란히 들킬 수밖에 없는 목덜미가 하필이면 거기에 있는 까닭이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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