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접기로 한다’ 전문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 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마음을 그만 접기로 했다’라는 말을 더러 들었지만, 말뜻을 곰곰이 생각한 적은 없다. 무엇인가에 대한 포기, 아니면 마음 정리를 했다는 정도로만 이해했다. 그런데 그 말의 의미가 심상치 않다. 오묘하고 깊이가 있다. 겸손의 미덕에서부터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에 이르기까지. ‘접기’는 문득 깨닫는 또 하나의 수행방법이다. 뻣뻣해서 잘 접히지 않겠지만, 가능한 나를 접도록 애써야겠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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