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분규를 보는 마음은 착잡하고 답답할 뿐이다. 한 목회자의 부적절한 행위의 진위 여부를 놓고 교인 간에 옹호, 배척 싸움을 벌이더니 결국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다. 양쪽의 설명은 들을수록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딱 한 발자욱 물러나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보는 의연한 자세가 아쉽다. “회개, 용서, 화해 그리고 사랑이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닌가” 라는 물음에는 하나같이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따른다”고 답한다.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는 십계명을 떠 올리게 한다.
그들의 언행에는 신에 대한 외경심이 실종된 상태다. 그야말로 지옥 만들기에 앞장 선 비종교인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갈등과 미움을 조장하는 종교행위는 본래의 진정 한 의미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종교적인 모습은 비단 교회 분규에서만 보는 것은 아니다.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은 득도 못지않은 종교인의 또 다른 수행 자세일 것이다. 자신의 종교만이 절대적이며 다른 종교는 오직 타도의 대상일 뿐이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막무가내 식 극성 전도도 비종교적이다.
다양한 언로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과 함께 사탄의 역사로 되받고 무조건 순종만을 강조하는 것도 성숙하고 미래지향적인 종교인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물질적 축복에 매달리는 축복기도는 원시종교의 틀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가정과 사업체 돌보기는 소흘히 한 채, 온갖 크고 작은 종교모임에 빠짐없이 참여한다고 과연 신앙심이 돈독하다고 칭송받을 만 한 것일까. 우리의 일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비종교적인 모습으로 넘쳐 나 보인다.
현대종교학자들은 종교를 갖는다는 의미를 “신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세에서 성스럽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의 추구”라고 정의한다. 종교는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같이 인간 본래의 능력과 가능성으로 신성을 개발하고 진리를 깨달아 서로를 사랑하며 나눔과 섬김과 봉사의 삶을 실천하기를 가르친다.
종교를 갖는다는 의미는 굳이 거창한데서 찾기보다는 작은 일상에서 양심을 지키고 원칙과 상식에 따라 공동체를 기름지게 하고 이웃을 따뜻하게 하는 자신의 ‘성성’(聖性) 탐구와 실천이라는 설명이다.
사랑과 화평보다는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예수 영접하고 구원 받았으니 천국입성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도식에 빠져, 현세의 삶이야 그리 거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종교를 갖는다는 것이 꼭 사후의 천국 입성을 보장 받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움의 감정은 상대방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출발되는 감정이다. 삶을 통찰하고 내면을 성숙시키는 자세야 말로 종교를 갖는 중요한 의미이다. 외부 지향적이기 보다는 누구에게도 노출되지 않게 숨 쉬듯 조용히 천국 만들기를 실천하는 종교생활이 아쉽다.
이종운
본보 인랜드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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