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 (1980~) ‘나는 당신보다 아름답다’ 전문
여자는 두 팔로 남자의 허리를 감고
남자의 가슴에 울음을 바르고 있다
등이 점점 둥글게 말린다 그대로
서로의 몸속으로 들어설 것처럼
얼굴을 핥아가며 기록하는
슬픔의 지형과 습도와 기온
잃어버린 축축한 열쇠를 들고,
오랫동안 잠겨 있던 문을 열며
들어가다 멈춰 선 자세로
서서히 사라지는 어떤 계절을
생각한다 그때 나는 아껴가며 울었다
신발 끈 묶듯 모든 이별을 경험했으니
방목하던 인류애를 모두 불러
일부는 팔아먹고 병든 것들은
풀어주었다 그 계절을 이렇게 적는다
개인의 역사란 뒷골목에 묻은
울음소리 같은 것 내 주변에는 늘
비가 내렸고 장엄한 풍경이 되기 위하여
나는 무엇이든 되기를 바랐다
비가 오는 밤에는 꼭 누군가
등 뒤에 서 있는 기분 사람은
누구나 등을 키우고
나는 나를 받아내느라 내 손을 다 썼다
지금, 남자가 울어버린다 등만 남긴
서투른 연애를 경청하며 조금씩
녹아내리는 사람이 있다 곁으로
구름이 모이고 달무리 진다
티브이 화면 속에서 우는 여자와 달래는 남자는 점점 하나가 된다. 화자는 그것을 보며 문득 한때를 떠올린다.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했던 시간들은 고스란히 뒷골목에 울음으로 묻혀 있다. 개인사라는 것은 본래가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인 것이다. 그러기에 나를 받아내느라 내 손을 다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티브이 속 주인공들처럼 위로를 해줄 상대도 없이 스스로 그 모든 일을 감당했으니, 당신보다 내가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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