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호 (1962~) ‘겨울의 빛’ 전문
우듬지에 겨울 햇살이 이명(耳鳴)처럼 매달려 있다
초록이 없으므로 햇살은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
나무는 제 발치께를 우두커니 내려다본다
발로 쓸어모으는 기억은 누구에게나 허전한 법이다
한때 웅숭깊었던 그늘의 넓이를 가늠하며
나무는 체온계를 문 아이처럼 생각에 잠긴다
텅 빈 고요가 압박붕대에 묶인 허리춤을 더듬는다
동그랗게 말린 이파리 몇 장이 마저 떨어져
이미 탕진한 삶을 둔탁하게 덧칠한다
저 잎들이 움켜쥔 허공조차 내 몫이 아니었구나
바람도 없는데 나무는 진저리친다
나뭇잎 대신 이명의 햇살이 떨어져 내린다
그늘이 있던 자리를 비춘다 배추 속같이 환하다
나무를 지탱하는 힘은 이제 고요가 아니다
겨울나무는 늙은 사람으로 의인화된다. 벌레를 잡으려고 허리에 둘러놓은 것을 압박붕대라고 여기고보면, 그 나무는 영락없는 환자다. 골똘한 모습으로 발치에 뒹구는 낙엽이나 쓸어 모으는 이때, 안간힘으로 매달려 있던 이파리 몇 장 낙엽 위로 떨어진다. 별 볼일 없는 삶의 연속성과 부질없음을 깨닫는 순간 나무는 배추 속처럼 환해진다. 비로소 자신의 내부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파리 무성한, 젊을 때에는 그늘에 가려져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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