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홍주 예일대 학장 물망
히스패닉.여성 후보쪽에도 무게
미국에서 최초로 한국계 대법관이 지명될 수 있을까.
미국 연방 대법원의 데이비드 해켓 수터(69) 대법관이 은퇴 의사를 천명함에 따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후임 대법관으로 누구를 지명할 것인지를 놓고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연방 대법원은 미국내 최고의 사법기관으로, 다양한 법률적 다툼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곳이며, 특히 미국인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도덕적 가치와 윤리규범에 관해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의 이념적 기울기를 결정하는 곳이기도 하다.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주당 정권이 대법관을 지명한 것은 15년전이 마지막이며, 그 사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8년 집권을 거치면서 대법원 완전히 보수성향으로 기울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오바마 대통령은 따라서 수터 대법관의 후임으로 소수인종 또는 여성계를 대표하는 진보적 성향의 법률가를 지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후보군에 오른 고홍주 학장= 워싱턴포스트는 2일 수터의 뒤를 이을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로 한국계인 고홍주(54. 미국명 헤럴드 고) 국무부 법률고문(차관보) 내정자를 비롯해 10명의 인사를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예일대 로스쿨 학장인 고 내정자가 대법관에 임명되면 미국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계 대법관이 탄생하는 것이다.
고 학장은 국무부 법률고문 인준을 위한 상원 청문회를 앞두고 일부 보수진영으로부터 매서운 공세를 받았는데, 이는 향후 고 학장이 대법관으로 지명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부터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
최근 보수 성향 매체인 폭스뉴스의 진행자 글렌 벡은 고 학장이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지지하고 있다고 공격했으며, 부시 전 대통령의 정치고문을 지낸 전략가 칼 로브와 존 볼턴 전 유엔 대사도 벡을 편들면서 고 학장을 물고 늘어졌다.
고 학장은 평소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에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미국의 법률에 국제적 인권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지론을 펴 왔으나 보수진영은 이러한 견해가 타국의 법률에 미국의 사법시스템을 종속시킬 위험이 있다고 비판해왔다.
이런 흐름에 보수진영내에서도 `과도한 흠집내기’라고 지적하는 분위기가 있으며 공화당 정권에서 법무차관을 지낸 시어도어 올슨 전 법무차관은 고 학장은 미국 사법시스템의 주류에 있는 법률 사상가라면서 두둔했다.
그러나 미 언론들은 고 학장이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 가운데 한 명인 것은 분명하지만 고 학장이 법관으로 활동한 경력이 없는데다, 국제법 분야의 전문가라는 것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히스패닉.여성쪽으로 무게= 200년이 넘는 미국 대법원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대법관을 지낸 110명(현직 포함) 가운데 흑인은 2명, 여성도 단 2명에 불과하다. 히스패닉과 아시아계는 단 1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선거라는 정치적 요소들을 고려할 때 미국내 유권자 비율에서 아시아계를 월등히 능가하는 히스패닉계에서 대법관 후보가 지명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워싱턴 조야의 평가다.
이 때문에 히스패닉계 여성 법조인인 소니아 소토메이어 제2 연방항소법원 판사와 킴 맥클레인 워들로 제9 연방항소법원 판사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또 다른 히스패닉 인사인 루벤 카스티요(남) 일리노이 북부지구 판사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엘리나 케이건 하버드대 로스쿨 학장, 다이앤 우드 제7 연방항소법원 판사, 제니퍼 그랜험 미시간 주지사 등 여성 법조인.정치인들도 유력 후보군에 이름을 올라 있다.
흑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주 대법원장에 오른 리 워드 시어스 조지아주 대법원장도 유력 후보 가운데 한 명이며, 역시 흑인인 드벌 패트릭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거론된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이 2006년 알츠하이머를 앓던 남편을 위해 대법관직에서 사퇴한 후 현재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대법관이 유일한 여성으로 남아 있다. 올해 75세인 긴스버그 대법관은 취근 췌장암 수술을 받음으로써 조기 은퇴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재 미 언론에서 거론되는 대법관 후보들의 7할 이상이 여성으로 채워진 것도 바로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이념적 경향에 어떤 변화?= 현재 9명의 대법관 가운데 공화당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새뮤얼 알리토,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클래런스 토머스, 레이건 대통령 때 임명된 안토닌 스칼리아, 앤서니 케네디 등 5명의 대법관은 보수성향으로 분류된다.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긴즈버그와 스티븐 브라이어, 포드 전 대통령 때 임명된 폴 스티븐슨, 아버지 부시 대통령 재임 때 임명된 데이비드 수터 등은 진보성향을 보여왔다.
수터 대법관은 임명 당시 보수적인 판결에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진보적인 성향으로 옮아간 점이 특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따라서 수터 대법관의 후임으로 진보성향의 인사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법관 인준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급진적 성향의 인물이나 주류에서 크게 벗어난 법조인을 지명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가 수터의 후임으로 진보적 인물을 앉히더라도 현재의 5대4 비율로 보수성향이 우세한 구도가 달라질 수는 없기 때문에, 수터의 후임보다는 오히려 오바마의 1기 임기내에 추가로 대법관을 임명할 기회가 찾아올 것인지에 더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9명의 대법관 가운데 스티븐슨은 88세로 최고령이며, 긴스버그(75), 스칼리아(72), 케네디(72), 브라이어(70) 등은 은퇴의사를 밝힌 수터(69)보다 나이가 많다.
대법관은 종신직이지만 수터 이후로 건강상의 이유나 일신상의 이유로 중도 사퇴하는 인사가 오바마의 임기중에 더 나온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대법원의 이념적 기울기가 진보적인 분위기로 반전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오바마의 대법관 후보 지명을 둘러싸고 진보.보수 진영에서 치열한 정치적 공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상원 법사위에서 공화당의 명실상부한 리더였던 알렌 스펙터 상원의원이 최근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자 오바마 대통령이 감격해 마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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