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씨, 주한미군 통신서비스 계약 관련 미 공직자에 뇌물
임 한국서 재판 받았으나 출장중 미국서 체포 기소돼
미 법무부, 한국 법무부 수차례 석방요구 서신 무시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러 한국 당국으로부터 이미 사법처벌을 당한 한국인이 같은 범죄에 대해 미국에서 미국 당국에 체포돼 사법처벌 절차에 부쳐져 주권 및 자국민 보호 문제를 놓고 한국과 미국 사이에 외교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한국과 미국이 모두 가입돼 있는 국제협약은 “하나 이상의 관련국이 협약 해당 범죄에 대한 기소권을 갖고 있을 경우 관련국은 요청에 의하여 처벌에 가장 적절한 기소권을 결정하도록 협의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협약 가입국들이 자국민을 같은 범죄에 대한 2중 처벌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이번 사건은 한국이 기소권을 행사한 범죄사건에 미국도 기소권을 행사하고 나서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기소권 행사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공군특수수사대(AFOSI) 요원들은 지난해 11월19일 사업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서 텍사스주 달라스를 방문한 한국인 정기환(44)씨를 미국 공직자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키스 아이드 AFOSI 특수수사관이 2008년 11월14일 연방텍사스북부지법에 제출한 체포영장청구서에 따르면 정씨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한국의 ‘삼성렌탈 주식회사’(SSRT)가 지난 2001년 미 국방부로부터 주한미군에게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2억600만 달러 상당의 수주 계약을 따내고 또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에서 미공군교역처(AAFES) 아시아 태평양 지역본부 프로그램 담당 클리프톤 초이(57)와 주한미군 태평양 중앙교역 담당 헨리 리 할로웨이(42) 등 미 군속자들에게 2001년-2005년 수차례에 걸쳐 뇌물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다.
실제로 정씨 체포에 따라 연방텍사스북부지법 대배심은 지난해 12월17일 정씨를 2건의 공직자 ‘뇌물공여’(Bribery) 혐의로 정식기소했다.
배심은 기소장에서 정씨가 AAFES와 SSRT와의 계약에 대한 미 공무원의 공적 영향 행사를 위해 한국에서 2001년 10월-2005년 8월 AAFES 태평양 지역본부 담당 공직자 ‘A’(신원 미공개)에게 11만4,000달러 상당의 현금, 유흥비와 여행비를, 2003년 5월-2005년 4월 AAFES 주한미군 태평양 중앙교역 담당 공직자 헨리 리 할로웨이에게 8만1,000달러 상당의 현금, 유흥비
와 여행비를 각각 제공했음을 주장하고 있다.
배심이 기소장에서 AAFES 태평양 지역본부 담당 클리프톤 초이를 ‘A’로 신원 미공개 처리하고 AAFES 태평양 중앙교역 주한미군 담당 헨리 리 할로웨이는 실명 처리한 이유는 정씨 사건과 관련, 초이가 미 당국의 사법조치에 앞서 지난해 8월29일 하와이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검거가 불가능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할로웨이는 지난달 17일 FBI 요원들에 의해 조지아주에서 검거된 뒤 같은 달 21일 검찰과의 사전합의에 따라 자신이 한국에서 근무할 당시 정씨로부터 7만달러 상당의 현금, 주식, 유흥비, 여행비와 그 외 금품을 수수한 사실과 이 같은 수입에 대해 미 국세청(IRS)에 세금보고를 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고 1건의 미 정부 대상 사기 ‘공모’(Conspiracy)와 1건의 ‘허위세금보고’(Filing a false tax return) 혐의에 유죄를 시인, 4일 현재 선고 공판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기소권 행사
그러나 정씨는 초이와 할로웨이 뇌물 제공 범죄와 관련, 2006년 10월 한국에서 이미 한국경찰에 의해 체포된 후 한국법원에서 사법처벌을 받았다.
한국 경찰청과 법원 기록에 따르면 경찰청은 경기지방경찰청 외사과 외사2계가 2006년 5월17일 주한미군 오산미공군기지의 AFOSI 수사요원으로부터 정씨와 SSRT, 할로웨이 등의 군납비리 내사에 대한 공조수사 요청을 받자 수사에 착수, 같은해 10월10일 정씨를 ‘국제상거래에있어서외국공무원에대한뇌물방지법’ 위반으로 체포했으며 수원지방법원은 재판 끝에 2008년 1월30일 정씨에게 1억원(1만2,740달러 상당, 4일 현재기준), SSRT에게 2억원(2만5,480달러 상당) 벌금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피고인은 주한미군기지에 인터넷 접속 및 인터넷 전화 서비스 등의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삼성렌탈 주식회사의 대표이사, 삼성렌탈 주식회사는 통신기기 및 전자제품 위탁관리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으로 “국제상거래와 관련하여 부정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외국
공무원 등에게 그 업무와 관련하여 뇌물을 약속 공여하거나 공여의 의사를 표시하면 아니 됨에도 불구하고” 초이와 할로웨이에게 “뇌물을 약속하거나 공여하였다”고 판결했다.법원은 구체적으로 피고인들이 초이에게는 2001년 11월경 미군측의 새로운 사업자 선정 입찰과 관련, 입찰진행상황 및 입찰에 참여한 ‘에스케이(SK)텔링크, 하나로텔레콤, 두르넷 등 국내의 유력 경쟁업체들이 제시한 입찰수수료 등의 입찰관련 정보를 수시로 제공받는 등의 도움을 받아 제공업체로 선정되는 대가로 총 20차례에 걸쳐 합계 미화 10만달러 현금 및 한화 1,144만원 상당의 술과 안주 등 향응을 제공했음을 인정했다.
법원은 또 피고인들이 할로웨이에게는 그가 SSRT 통신 서비스의 품질과 가격 등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면서 계약을 취소하려 하자 불만 여론 무마 및 납품계약 유지를 대가로 SSRT 주식 1만주(액면가 500원), 현금, 향응 등 총 21차례에 걸쳐 합계 미화 6만8,000달러 및 한화 961만
7,000원 상당의 향을 제공했음도 인정했다.이에 대해 정씨와 SSRT는 “정당한 업무수행을 촉진할 목적으로 소액의 이익을 약속하거나
공여하였을 뿐, 부정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뇌물을 공여하지 않았다”고, 검사는 “피고인들에 대한 제반 정상을 참작하여 보면, 원심이 선고한 형이 너무 가볍다”고 각각 항소했으나 2008년 9월3일 수원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양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시켰다.또 정씨와 SSRT는 곧바로 이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이 역시 2008년 12월24일 기각됐다.
한미 외교 마찰
정씨의 미국 체포를 앞두고 2008년 9월19일 미 법무부 형사과 국제관계실 매리 엘렌 왈로 실장으로부터 정씨 사건에 대한 ‘형사사법공조요청’ 서류를 접수한 한국 법무부는 미국측의 요청에 응하는 와중에 정씨의 미국 체포 소식을 접하자 왈로 실장에게 최소한 3차례에 걸쳐 항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법무부 국제형사과 진경준 검사는 2008년 12월8일자 서한에서 “(한국과 미국간의) 적절한 기소권 결정 협의”를 규정하는 관련 국제협약 조항과 정씨가 한국법정에서 이미 유죄판결을 받은 사실을 상기시키고 미국이 한국에 ‘형사사법공조요청’을 해와 한국이 이를 이행하고 있는 도중에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씨를 체포한 점 등으로 인해 “미국과 한국간의 협력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가능성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미 당국이 정씨가 같은 위법행위로 2차례 (유죄판결) 위험에 처해지지 않도록 석방시켜 주면 감사 하겠다”고 요구했다.
이어 법무부 국제형사과 유호근 과장도 지난달 16일 왈로 실장에게 정씨가 미국에 입국하자마자 미 수사당국에 체포된 경위를 문의한 자신의 또 다른 서한(3월23일자)에 대해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음을 상기시키고 “지난번에도 지적했듯이 미국의 한국 국민 정기환씨에 대한 체포 또는 형사처벌은 정씨가 이미 한국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그 판결을 한국 대법원이 확인했기에 2중 처벌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미 사법당국이 정기환씨를 가장 빠른 가능시일에 석방하면 대단히 감사 하겠다”고 재차 촉구했다.
그러나 미 법무부는 지난달 21일 이번 사건과 관련, 할로웨이가 유죄를 시인했고 ‘공모’죄에 최고 5년 실형과 25만달러 벌금, ‘허위세금보고’죄에 최고 3년 실형과 10만달러 벌금을 선고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며 “정씨 재판이 6월1일 시작될 예정”이라고 밝혀 사실상 한국 법무부의 요구를 거절한 셈이다.정씨는 미국에서 체포된 후 법원으로부터 ‘도주위험’ 용의자로 판정돼 보석 책정 없이 재판을 앞두고 4일 현재 5개월이 넘도록 수감된 상태이며 미 연방법은 공직자 ‘뇌물공여’죄에 대해 건당 각각 최고 15년 실형 및 뇌물금액 최고 3배까지의 벌금 선고가 가능하다.
한편 이번 사건은 한국인이 한국에서 미국인 공직자에게 뇌물을 제공할 경우 그 범죄에 대해 미국이 기소권을 갖고 있고 설사 그 범죄에 대해 한국에서 처벌을 받은 뒤에도 미국에서 또 다시 미국법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다는 판례가 서는 것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신용일 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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