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그리스전,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전 직후부터 한국언론에 갖가지 아르헨전 처방이 쏟아졌다. 대개 그리스전에서 보여준 한국의 강점과 나이지리아전에서 드러난 아르헨의 약점을 묶음처리한 것들이다. 태극전사들에 용기를 불어넣으려는 자기최면용 주술이라면 몰라도 이런 처방은 자칫 자기함정이 될 수 있다.
월드컵 2회우승에 빛나는 아르헨이 그리스와 다르다는 건 상식이다. 십리도 못가 발병난 듯 전반부터 어기적거린 그리스에 ‘2골이나 넣은 한국’과 비록 몰리기는 했지만 90분 내내 통통 튀는 탄력과 만만찮은 테크닉을 선보인 나이지리아에 ‘1골밖에 못넣은 아르헨’을 단순비교하는 건 안이하고 위험하다.
정확한 처방은 냉정한 진단이 전제돼야 한다. 결과에 책임없는 주변인들, 특히 상당수 언론매체들이 그리스전 완승에 고무돼 아르헨전에 대해서도 기대섞인 전망과 주문을 쏟아낸 것과 달리 허정무 감독이 신중모드를 견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해볼 만하다” “할 수 있다” “해내야 한다” 등 주술적 훈수들이 넘치지만 아르헨전 태극처방의 기본은 수비다. 공격은 옵션이라 해도 좋다. 종종 한국에서 잘못 쓰여지듯, 수비는 결코 소극플레이가 아니다. 최악을 막아내는 최선의 방책이다. 전력상 열세라면 더욱 그렇다.
수비 관점에서 오른쪽윙백 차두리의 잦은 공격가담은 독이 될 수 있다. 최근 평가전과 그리스전에서 그는 ‘성공적 외출’로 찬사를 받았으나 기껏 볼을 가로챈 뒤 패스미스로 몇차례 역습을 초래했다. 그럴 때면 그의 관할지역은 공터가 됐다. 조용형이나 이정수가 커버하면 중앙수비망에 틈이 생겼다. 상대들이 그 빈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무사했을 뿐이다.
아르헨은 다르다. 스스로 공간을 창출하는 능력(드리블에 의한 돌파나 창조적 공간이동)도 없고 자신이 막히면 찔러줄 믿음직한 동료도 없이, 게다가 배후지원이 거의 끊기고 체력마저 일찍 바닥난 채 한국문전을 서성거리던 그리스의 외로운 원톱 게카스와는 달리, 아르헨의 골사냥꾼들(메시, 이과인, 테베스 등)은 돌파력 슈팅력 패싱력을 두루 갖췄다. 사방팔방 배후지원도 든든하다. 순간적 폭발력과 갑작스런 방향회전도 탁월하다.
명사수들을 동시다발로 상대해야 할 한국으로선 중원부터 철저한 협력수비가 필수적이다. 그리스전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킥력이 좋기는 하지만 동작이 큰데다 순간적 움직임이 다소 느린 미드필더 기성용의 관할지역이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건 이 때문이다. 조용형과 이정수도 예정된 루트에 따른 공격을 막을 때는 안정적이나 갑작스런 방향회전이나 허찔린 패스로 표적을 놓친다 싶으면 미처 몸이 따라가지 않아 반사적으로 손부터 뻗거나 발을 거는 (듯한) 모습을 종종 노출했다. 메시 이과인 테베스 등이 위험지역을 넘나들며 파울을 얻어내는 데도 귀재들이란 점에서 특히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아르헨, 비겨도 그만인 한국. 급한 쪽은 아르헨이다. 한국이 지레 서둘 이유는 없다. 집중하되 긴장할 것도 없고 신중하되 위축될 것도 없다. 웃자란 자신감이나 공연한 자존심에 잠그기를 소홀한 채 부수기로 나서는 것은 더더욱 금물이다. 튼튼수비로 상대의 조바심을 자극하면 적어도 서너번은 황금기회를 엮어낼 수 있다. 그걸 작품으로 빚어낼 무기도 있다. 박지성 이청용의 감각패스와 질풍돌파 등이다. 공은 둥글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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