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 황지는 겨울 해가 짧았다. 높고 검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탄광촌은 매캐한 석탄 연기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손바닥만한 잿빛 하늘도 암울했다. 대학 졸업반 때, 광산토목 실습으로 탄광 갱구 속을 들어갔던 우리일행은 처음 목도한 극한 산업전선의 암담함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갱 속은 검고 습했다. 햇살 한줌 비치지 않는 땅속은 지금껏 본 어떤 어둠보다 깊었다. 칠흑의 어둠은 불안하고 고독했다. 2백 미터쯤 내려갔을까? 무개 전동차를 타고 올라오는 한 무리의 광부들을 보았다. 안전모에 달린 램프 빛에 스쳐간 그들의 눈망울은 굴속보다 더 어두웠다.
그로부터 수년 후, 미 환경청에서 일할 때, 와이오밍 주, 질렛이란 탄광촌에 환경감사를 나갔다. 노천광산이어서 광맥을 따라 땅 한 가운데가 분화구처럼 깊게 패여 있었다. 그 둘레를 집채만한 트럭들이 탄을 싣고 오르내렸다. 그 때 본 10층 높이의 대형굴착기를 움직이는 기사가 놀랍게도 앳된 금발처녀였는데 눈에 노동의 기쁨이 있었다. 같은 광산인데도 빛이 있는 곳엔 생명력이, 어둠의 갱 속엔 절망만 있었다.
몇 주전, 칠레 북부 코피아포의 구리광산에서 33명이 갇히는 붕괴사고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옛날 황지 탄광의 어둠을 생각했다. 광부들은 근 한달 째 지하 700여m 갱도 속 찌는 더위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견뎌내고 있다고 한다. 지하 700 m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근 2배나 되는 길이여서, 구조작업이 순조로워도 4개월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한다.
구조작업은 난공사이다. 우선 31톤 굴착기로 구멍을 뚫은 후에, 사람 하나 오를 만한 66cm 지름의 구조 통로를 만든다고 한다. 이 통로로 한 사람 오르는 데만 3시간, 모두 빠져 나오는 데 한 달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더 큰 난관은 낙석(落石) 처리이다. 구조통로 공사가 시작되면 광부들이 갇힌 지하 대피소 쪽으로 쏟아질 낙석 3천 톤을 밑에서 계속 제거해 주어야한다는 것이다. 33명이 24시간 꼬박 작업해도 두 달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암울한 상황 중에도 8cm 생명선 구멍을 통해 광부들의 동영상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기도와 격려를 부탁하며 애써 웃고 있다. 그중 33명이 모두 팔짱을 끼고 국가를 부르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그 장면을 보며 가족들과 국민들은 함께 울며 합창하고 있다. "칠레여, 광부들과 더불어 영원 하라!"고..
문득 와이오밍 탄광에서 본 금발기사의 미소가 생각났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줌 햇빛만 비친다면 생명력은 살아나는 법이 아닌가. 칠레 동광의 700 m 지하의 어둠 속에서도 매몰광부들을 살려 줄 햇빛은 따뜻한 가족 사랑과 국민들 성원의 노래일 것이다.
옛날 황지 탄광에서 만났던 가난했던 우리 광부들과도 함께 부를 노래가 있었더라면 서로의 가슴이 그토록 어둡진 않았을 것을... 칠레광부들의 생환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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