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 61주년 특집
▶ KBS 촬영팀 덕수궁 포격 막은 해밀턴 씨 취재
최근 KBS 역사스페셜 팀이 6.25 특집을 준비하기 위해 달라스를 찾았다. 무슨 일일까. 그들이 한국이 아닌 텍사스에서 6.25 특집을 촬영한 이유는 폭파위기의 덕수궁을 살린 영웅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전쟁 중 서울 수복 작전에 참가했던 고(98년 사망) 제임스 해밀턴 딜 중위. 샌안토니오 출신의 텍산(Texan)이다. 이 이야기가 한국에 전해진 것은 달라스 한인문화재단의 조진태 박사의 역할이 컸다. 조 박사가 그의 이야기를 번역해 한국에 소개했다. 역사스페셜 촬영팀도 조 박사의 안내로 해밀턴 씨의 생가와 무덤 등을 방문할 수 있었다. 조 박사를 만나 그가 가진 6.25에 대한 기억과 해밀턴 중위의 활약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 문화재를 지켜낸 영웅
조 박사가 해밀턴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이다. 해밀턴 씨가 쓴 ‘문골리에서 16일간’(Sixteen Days of Mungol-li)이란 원고를 검토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한국전에 참전한 해밀턴 씨가 전쟁 중의 일기를 엮은 것이다. 이중 조 박사의 눈을 사로잡은 내용이 있었다. 바로 1950년 9월 말의 서울 수복 작전이다.
당시 포대에서 공격 명령을 내리는 임무를 맡고 있던 해밀턴 씨는 인천 상륙 작전과 서울 수복 작전에 참가했다. 서울에서 포대 공격을 지휘하던 중 덕수궁에 인민군 수백 명이 집결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포격 개시’, 명령 하나면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의 고궁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상관을 설득시켜 포격을 막고 적군이 덕수궁을 나와 을지로와 태평로에 도달했을 때 공격했다. 한 중위의 양심적인 판단이 한국의 문화재를 지켜낸 것이다. 그는 “오늘날 덕수궁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 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흐뭇함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일기에 썼다. 이 이야기는 조 박사의 번역을 거쳐 1996년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 참전수기에 실렸다. 역사스페셜의 ‘포화 속에서 문화재를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는 23일 한국 시간으로 밤 10시에 방송됐다.
조 박사 덕수궁 산 날, 큰 형 잃어
사실 조 박사와 해밀턴 씨는 1950년 9월 25일 이 사건이 터졌을 때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었다. 조 박사는 당시 12살이었다. 서울이 인민군에 점령당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 큰 형과 누나는 친척 집에 숨어있고, 자신과 작은 형만이 집을 지켰다. 아버지가 포탄을 만들 수 있는 알루미늄 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인민군을 피해 있었던 것이다. 서울 수복 작전이 시작되고 걱정된 부모님이 큰 형을 보냈다. 영등포가 국군에 의해 수복되고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후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옆집이 산산조각 나면서 자신도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형이 움직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의사를 모셔왔다. 하지만 형은 벌써 파편에 맞아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해밀턴 중위가 덕수궁을 살린 날, 조 박사는 큰 형을 영원히 잃었다.
오세희 화백 수용소 이야기도 번역
한국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상처를 남겼다. 그중에는 거제도 65 수용소에서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오세희 화백도 있다. 그의 이야기는 ‘65수용소, 한국전에 대한 기억’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한 사람이 바로 조 박사다.
전쟁이 터질 당시 서울대 학생이었던 오세희 씨는 경북 의성에서 인민군에 잡혀 강제로 징용될 위기에 처했다. 가까스로 도망쳐 나왔지만, 이제는 인민군으로 오해받아 UN군에 잡혀 포로수용소로 끌려간다. 기구한 운명이다. 그렇게 거제도 65 수용소에서 2년을 보낸다. 항상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중공군과 인민군, 의용군 등이 모인 수용소는 친남파와 친북파로 나뉘어 작은 전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항상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만큼 한국 전쟁은 우리 동포들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젊은 세대 북한 제대로 알아야”
환경학을 전공한 조 박사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 퇴직 후 한인문화재단을 만든 이유도 한인들의 문화 계몽을 위해서다. 특히 자신이 경험한 한국전쟁에는 더 애착이 간다. 그는 “한국 전쟁의 기억을 문자로 남기는 일은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알아야 똑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전쟁은 공산체제와 민주체제의 싸움이었다. 젊은 세대들이 북한 정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북한의 무서움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개개인 뿐 아니라 국가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함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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