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비를 머금은 남풍이 불면 게가 금방 눈을 감춰버리듯이 음식을 재빠르게 먹어치우는 모양을 의미한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도 있다. 유유상종과 비슷한 말이다. 중국의 후진타오가 북한의 김정일을 감싸는 것도, 며느리 구박하는 시어머니를 시누이가 두둔하는 것도 ‘가재는 게 편’이기 때문이다.
게는 똑바로 걷지 못한다. 아빠 게가 새끼들에게 “너희들은 왜 앞으로 걷지 못하고 비겁하게 옆걸음질을 하느냐? 다리 열 개로 보무당당하게 정도를 걸어라”고 훈시했다. 새끼 게들의 요구에 아빠가 시범을 보였지만, 그 역시 옆걸음질이었다. 아들에게 “나는 바담 풍(風)해도 너는 바담(바람) 풍하라”고 가르쳤다는 혀 짧은 아버지나 매한가지다.
게와 여우의 설화도 있다. 게와 여우가 경주를 했다. 게는 출발과 함께 여우의 긴 꼬리자락을 슬쩍 물었다. 한참 달리던 여우가 멈춰 서서 게가 어디쯤 오는지 확인하려고 뒤돌아서는 순간 게는 여우 꼬리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여우가 다시 뛰려고 돌아서자 한 발짝 앞에 게가 웃으며 서 있었다. 경주를 몇 차례 반복했지만 결과는 매번 마찬가지였다. 이솝우화에도, 일본설화에도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있다. 약삭빠른 여우보다 미물인 게가 더 영리할 수도 있다는, 힘의 우위보다 지혜의 우위를 강조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게 이야기를 생뚱맞게 늘어놓은 이유는 워싱턴주 특산물인 던지니스 게를 최근 엄청 많이 잡고 또 먹었기 때문이다. 미국인 친지의 호의로 생전 처음 경험한 게잡이였다. 보트를 타고 퓨짓 사운드 한 복판으로 나가 미리 로프에 매달아 바다바닥에 내려놨던 게망을 2~3개 건져 올린 후 안에서 우글거리는 20여 마리의 게를 꺼내 아이스박스에 담았다.
바다바닥에 게가 깔려 있는 듯 대여섯 차례 출격할 때마다 ‘만선’을 구가했다. 시즌 첫날(7월 1일)이긴 했지만 시애틀에서 불과 60여 마일 거리인 카약 포인트 앞바다에 게가 그처럼 많다는 게 신기했다. 남녀노소 일행 40여명이 둘러 앉아 잡아온 게를 계속 삶아가며 게눈 감추듯 포식했다. 속된 말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싱싱했다.
게가 여우보다 영리하다는 건 전혀 헛소리다. 게망 안의 미끼(닭고기)에 홀려 죽음을 자초한다. 게망 문은 밖에서는 밀고 들어갈 수 있지만 안에서는 철조망에 걸려 열 수 없게 돼있다. 게망에서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동료들을 봤을텐데도 비어 있는 다른 게망에 멍청하게 기어들어간다. 철망 안의 게가 밖의 가족에게 경고(?)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
게망에서 게를 꺼낸 미국인 친지는 게잡이 규정에 따라 암컷은 무조건 바다에 던졌다. 수컷도 게 낚시용 플라스틱 자로 일일이 등딱지의 너비를 재서 허용규정(6.5인치)에 1밀리만 미달돼도 놔 줬다. 비슷한 크기지만 어느 놈은 살고 어느 놈은 죽었다.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독일군 장교의 손가락질 하나로 생사가 갈린 유대인 포로들의 운명 같았다.
저지방, 고단백 식품으로 비만, 고혈압, 심장병 환자들에게도 권장되는 던지니스 게는 워싱턴주 올림픽 반도의 스큄 인근 던지니스 갑(岬)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그곳에서 최초로 상업용 게잡이가 허용됐기 때문이다. 알래스카의 앨류샨 열도에서부터 북부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폭넓게 분포돼 있다. 던지니스 게는 오리건주의 ‘주(州) 갑각류’로 지정돼 있다.
수평선 위로 치솟은 눈산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맞은 편 카마노 섬 뒤로는 올림픽산 봉우리들이 병풍을 둘렀다. 산엔 고사리와 각종 딸기, 바다엔 조개, 굴, 가재미, 연어와 함께 귀한 던지니스 게까지 지천인 워싱턴주야 말로 파라다이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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