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선거 캠페인 표지판 전쟁이 한창이다. 길에 다니다 보면 후보자들의 캠페인 표지판이 즐비하게 꽂혀 있는 것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이제 선거를 두 주도 채 안 남겨 놓고 각 후보 진영에서는 기를 쓰고 표지판 하나라도 더 꽂으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 같다. 버지니아 주는 매년 선거가 있기에 이 맘 때면 항상 선거 표지판 홍수 현상을 보게 된다. 이러한 표지판 전쟁에 사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광역 교육위원 후보로 카운티 전체가 내 지역구이기 때문에 카운티를 쪼갠 작은 구역을 지역구로 하는 다른 후보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숫자의 표지판을 꽂는다.
그런데 사실 선거 캠페인을 벌이면서 표지판을 꽂는 것보다 더 비생산적인 선거홍보도 없다는 것을 느낀다. 표지판이란 것이 어느 후보가 출마했구나 하는 정도의 매우 단편적인 정보 외에 다른 것은 전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 많은 표지판을 꽂기 위해서는 일단 힘들게 마련한 선거자금의 상당 부분을 값비싼 표지판 제작비에 사용해야 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원봉사자들의 귀한 시간과 노력을 소모적인 일에 써야 한다. 자원봉사자들은 길에 차가 많이 다니는 시간을 가능하면 피하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장갑을 끼고 망치를 들고 다니면서 도로 중앙분리대와 길가에 표지판을 꽂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후보자들이 경쟁적으로 표지판을 꽂는 이유는 길가에 다른 후보자의 표지판은 많은데 자신의 것이 적으면 왠지 선거전에서 뒤쳐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유권자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그 후보자를 지지하는 후원자들에게도 심리적인 불안감이 생길 수 있다.
또 자원봉사자들이 표지판을 꽂다 보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의 것이 좀 더 멋있고 드러나 보이게 하려는 마음에 과욕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오히려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하고, 이에 대한 항의를 받기도 한다. 그 중에는 아예 선거관련 표지판을 꽂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캠페인 자금을 쓰는 것으로 보아 카운티 교육예산도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사실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항의이다. 후보인 나 자신이 보아도 너무 많은 선거 관련 표지판들이 길 가에 즐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일반 주민들이야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전적으로 자원봉사자들에게 의존하는 후보의 입장에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듣기 싫은 얘기를 쉽게 할 처지도 못된다. 나름대로 후보를 돕기 위해 바쁜 생활 가운데에서도 몇 달 동안 희생적으로 돕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칫 실망이 될 수 있는 얘기를 차마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속으로 그냥 앓고 있기만 한다.
최근에는 표지판의 숫자뿐만 아니라 크기도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예전엔 허용된 최대 규격의 표지판은 매우 드물었는데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후보들이 큰 표지판들을 경쟁적으로 세우는 듯하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주 법률상 길에 캠페인 표지판을 꽂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관행적으로 후보자들 모두가 이러한 법을 무시하고 있고, 사법 당국에서도 제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해치기 때문에 그러한 주법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반론도 있지만 엄연히 후보들 모두가 현행법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이 선거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후보들에 대해 알아보려 하는 노력을 보이고 실제로 투표에 적극 참여를 한다면 왜 굳이 힘들게 표지판을 꽂겠냐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렇게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니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올해의 캠페인 시즌도 이제 다 끝나간다. 그 동안 표지판을 꽂기 위해 수고한 모든 자원 봉사자들께 감사한다. 그리고 어지러운 표지판을 인내하고 참아 주신 대부분의 주민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이번에 제발 투표율이 높아지기를 바라고, 다음 선거 때부터는 모든 후보자들이 서로 신사협정을 맺어 자정노력을 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표지판 꽂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표지판 제작회사를 빼놓고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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