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예나 사군자 작품을 20대에서부터 해왔다. 29살, 첫 개인전을 한 이후, 더욱 작품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개인전을 하기 전까지는 주로 선물을 하였다. 전시회를 시작하면서 부터는 그렇게 많은 선물은 못했지만 꼭 필요할 때는 선물을 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승려는 무소유라는 사상이 있어서 그런지 작품을 파는 것 보다는 선물하는 편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전시회를 앞두면 주야를 가리지 않고 삼매에 들어 작품에 몰입한다. 나의 작품이 남의 집에 걸린다는 것은, 작품을 소유한 사람이 그만큼 애착이 가서 소중히 여겨야 하기 때문이다. 성의 없는 작품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내 싫증을 내게 만든다. 경제적인 여유와 정서가 메마른 집에서는 진품의 작품 한 점 찾아보기 힘들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어 작품을 여러 점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그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을 내 걸게 된다는 사실이다.
작품을 할 때는 작품을 하는 사람의 정성과 기운이 들어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작품을 하면서 봐도 그렇다. 내가 기분이 좋을 때는 기분 좋은 작품이 나오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나 병이 들었을 때는 왠지 모르게 작품도 힘이 없고 병들어 있는 느낌이 든다. 또 작품의 제작은 날씨하고도 관계가 있다. 쾌청한 날 작품은 맑고 발랄한 맛이 나며,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은 왠지 모르게 작품이 차분한 느낌이 든다. 나는 이와 같음을 일찍이 느끼며 살아왔다. 30대 초반 개운사시절, 어느 도반스님이 찾아와서 병풍을 하나 써달라고 하는데 그 때 감기가 들어 무척 앓고 있을 때였다. 와서 하도 조르는 바람에 내 방에서 밤을 새워가며 끙끙 앓으면서 병풍을 써준 일이 있지만 왠지 지금도 내 마음에 석연치 않다.
붓을 잡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작품이 나오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붓만 잡으면 작품이 쉽게 나오는 줄 안다. 그래서 나에게 작품을 한 점 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작품이란 그렇지가 않다. 작품을 하려면 먼저 작가 자신이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이 울어나야 한다. 만일 마음에 없는 작품을 하면 먼 훗날 자기가 자기작품을 외면하게 된다. 그래서 만일 작품을 해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작품이란 어느 때나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기다려 달라고 나는 먼저 부탁을 한다. 그리고 값을 물으면 내가 받고 싶은 만큼 값을 주던지 아니면 그냥 주겠다고 한다.
작품이란 작가가 기분 좋은 상태에서 자기 마음대로 표현을 해야 하고 자기의 기쁜 에너지가 들어있는 진품이라야 소장하는 사람도 보람이 있다. 그림이나 글씨 속에 담겨진 에너지란 우리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 기운은 작품이 없어지는 날까지 살아서 움직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작품이 크다고만 해서 가격이 비싼 것은 절대 아니다. 작지만 에너지가 많이 들어있는 것이 있고, 크지만 에너지가 전혀 들어있지 않는 것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작품의 가치를 잘 모른다. 그러나 볼 수 있는 사람은 작품의 진가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자기 집에 작품을 한두 점 가지고 싶지만 쉽게 소유하지 못하는 이유는 작품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을 주는지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Dec 15. 2011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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