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갓 이민 온 한인들은 소위 ‘문화충격’을 겪게 마련이다. 장례식장에서 곱게 단장하고 관속에 잠자는 듯 누워있는 시신을 보고 놀라 자빠진 사람이 있다. 이몽룡이었던 이름이 갑자기 존 리로 둔갑하고, 부인 성춘향은 제인 리로 성까지 바뀌기 일쑤다. 미국인 이웃의 아기가 귀엽다며 ‘고추’를 만졌다가 성희롱으로 몰려 감방에 간 노인도 있다.
이제 머지않아 올드타이머 한인들도 결혼식장에서 까무러칠 꼴을 보게 생겼다. “신랑 아무개 군과 신부 아무개 군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 사랑하라”는 주례사를 들은 멀쩡한 두 남자가 대중환시리에 ‘뽀뽀’하는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말로만 들온 게이 결혼식이 워싱턴주에서 빠르면 오는 6월부터 합법적으로 치러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의 결혼은 이미 코네티컷, 아이오와, 매사추세츠, 뉴햄프셔, 뉴욕, 버몬트 등 6개주와 워싱턴 DC에서 합법화돼 있다. 캐나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아이스랜드,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 10개국도 게이결혼을 인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국민 동성애자들이 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경우 이를 인정해준다.
21세기 들어 선진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한국은 게이결혼에서도 선진국이다. 이미 2004년 3월 두 30대 남자가 서울의 게이 바에서 첫 ‘공개 게이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거주지인 은평구청에 혼인신고를 했으나 퇴짜 맞았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가 “(아직은) 사회통념상 동성결혼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진보성향의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워싱턴 주의회는 올해 회기가 3월 8일 끝나기 전에 동성애자 결혼합법화 법안을 밀어붙일 계획이다. 주하원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는 건 불문가지이고, 주상원에서도 통과 하한선인 25표가 확보된 상태이다. 이 법안 제정에 불을 붙인 크리스 그레고어 주지사(민주당)도 법안 통과 후 즉각 서명하겠다고 공언했다.
법안통과가 기정사실화 하자 이를 뒤집을 주민발의안이 올 가을 선거에 상정될 것인지 여부에 관심이 옮겨지고 있다. 발의안을 추진하는 종교계 등 보수단체들은 주의회 폐막 후 90일 안에 최소한 12만577명의 유권자 서명을 확보해 주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법안을 보이콧하면 그걸로 끝장이고, 승인하면 12월 6일부터 발효한다.
게이결혼의 쟁점은 인권차별과 전통수호로 요약된다. 지지자들은 성(sex)을 근거로 한 차별은 헌법에 보장된 인권의 침해라며 게이커플이 전통부부처럼 정책적 혜택을 받으려면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자들은 결혼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인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라며 이 진리가 무너지면 세상만사가 무너진다고 맞선다.
종교계는 특히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를 상기시키며 이들 도시가 유황불 심판을 받은 것은 신이 금지한 남색(소도미)이 창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은 구약성경의 전체 5,888개 구절 중 동성애를 금지한 대목은 단 두 구절(레위기)이고, 그나마 남색에 관한 것일뿐 여자들의 동성애에 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다고 반격한다.
사실은 종교인들이 모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워싱턴주 상원에 게이결혼 법안을 상정한 에드 머리 의원은 천주교 신자다. 그레고어 주지사도 그렇고, 지난해 뉴욕 주에서 법안통과에 앞장섰던 앤드류 쿠오모 주지사도 그렇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닷컴, 스타벅스, 나이키 등 정치인들의 큰 돈줄인 대기업들이 모두 이 법안을 지지하고 있다.
한인들은 워낙 점잖아서 게이결혼 문제에 가타부타 말을 않는다. 한 친지는 “그 사람들이 아이들을 입양한다지만 수염달린 엄마를 아이들이 좋아할까?”라며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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