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에 대한 나의 인색吝嗇함
▶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붓글씨나 사군자에 관하여 나는 한국 불교미술 전람회에 출품하여 일곱 번을 입선해봤고, 또한 한국 전시미술 대상 전에 출품하여 세 번을 입선했다. 어느 누구 한사람 도움 없이 순수한 출품이었다. 나는 열 번의 상을 받아본 이후 더 이상 출품하여 상 받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나의 세계를 알리기 위해서 한국에서 3번, 미국에서 2번의 전시회를 개최하기도하였다. 지금도 끊임없는 예술의 고지를 향해서 정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술의 끝은 어디까지라고 단정할 수가 없다. 항상 죽을 때까지 끊임없는 정진만이 있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973년 불미전佛美展에 첫 입선이 된 이후, 나를 만나는 스님들이나 나를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작품을 하나 해주길 직접 부탁하기도하고 은근히 내가 그냥 주길 바란다. 내가 불미전에 입선하기 이전에 내가 친 묵화나 내가 쓴 글을 표구를 하여 남에게 주고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면 굉장히 날아갈 듯 기뻤다. 그래서 그 당시 원하는 사람이라면 서슴없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볼일이 있어 사찰의 창고에 들어가니 나의 대나무 작품이 버려져 먼지가 뿌역케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내가 애지중지하며 아끼던 묵죽墨竹 한 점을 표구하여 선물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부끄러움이 앞섰다. 나의 작품이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되어있을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 안했던 상황이라 당황하여, 그 그림을 면도칼로 오려서 가져와 개운사 뒤뜰에 가서 소각하며 다짐했다. 앞으로는 누가 그림이나 글씨를 써 달라고 부탁하면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눈물을 삼켰다. 물론 작품이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작품을 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자기의 작품이 어디에 있든지 환영받기를 바랄 것이다. 작품을 하는 작가의 마음이란 자기의 작품이 아들딸과 같이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설사 남이 작품을 가져갔다 해도 마음한구석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간혹 사람들을 만나면 “스님은 무엇이 걱정입니까? 스님께서 이루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작품을 하나씩만 해서 드려도 모든 일이 수월할 텐데!” 하며 나를 부추긴다. 내가 각성포교원에서 포교할 때 정암스님은 나를 만나면 대뜸 하시는 말씀, “법장스님은 뭐가 걱정입니까? 공부도 그만큼 했겠다, 필체 좋겠다. 아닌 말로 사군자 작품 만들어 한 점에 만원씩만 받아도 원하는 데로 불사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뭘 그렇게 망설입니까?”하며 나에게 작품을 할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수행의 길은 수행의 길이듯, 작품도 순수성을 잃지 않으려면 금전거래와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내가 부처님께 기도해서 가피력을 얻은 만큼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보는 예술세계란 순수함 그 자체이다.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사리사욕에 눈이 어둡고 물질적인 것만 쫓다보면 종교인으로서의 도리에 어긋나 세인들의 지탄을 받는 것이다. 나는 물질을 떠난 예술의 세계를 추구하려고 하기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작품에 인색하다는 소리를 간간이 듣는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는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예술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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