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속에 전시
1978년 5월, 종로 조계사 앞에 있는 견지화랑을 일주일간을 빌려 첫 개인 서화전을 개최하였다. 난생 처음 전시회를 개최하려하니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지 몰라 한동안 어리둥절하였다. 표구비며, 팜플렛, 화랑 대관료가 보통이 아니었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이 모두인 나에게는 많이 부담 가는 일이었지만 한 번 저질러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서화 전시회를 개최한 스님들이 드물었다. 나는 전시회를 화려하게는 못하고 그럭저럭 준비하여 전시를 하는데도 내가 비용을 감당하기엔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리셉션준비는 개운사 불자님들께서 하셨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고, 또 안내를 봐주는 것도 청년회원이 몇 명 도와준 관계로 무사히 하고 있는 중인데, 하룻날 갑자기 전기가 나가 앞이 안보일 지경이었다. 할 수 없이 촛불을 작품 사이사이에 밝히고 하루를 보냈다. 작품이란 밝은 곳에서 전체를 보며 감상하여야하는데 촛불로 보려니 운치보다는 답답함에 마음이 많이 상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인력으로 안 되는 것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안내하는 아이들이 오는 손님 반갑게 맞이하여 안내를 잘해준 덕분에 별 문제는 없었다.
개운사에서 손 걸망을 매고 서도를 배운다, 묵화를 배운다고 다니는 것을 다른 스님들이나 신도님들은 알고 있었어도 전시를 할 만큼이 된 줄은 아무도 몰랐었다. 그러니 신도님들은 공부하는 법장스님을 도와주기 위해서 작품을 하나씩 가져가기로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전시장에 나온 작품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 한 사람도 가져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삼일이 지나고 사일 째 되는 날 예전에 개운사에서 하룻밤을 자고 간 신도님께서 찾아오셨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니까 일간지 문화게시판을 보고서 왔다는 것이다. 작품을 한 점 가져가겠다 하기에 하나 권해드렸는데 마음에 들어하시며 작품대금을 그 자리에서 주고 가셨다. 이후로 간간이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당시는 언론 매체들이 많아서 작품전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려는 기자들이 줄을 이어, 작품전이 끝나고도 6개월 후까지 나의 작품전 소개를 하였다. 그 당시 기사로 나갔던 내용을 모으고 이어서 2회전 3회전까지 모아둔 스크랩북이 한 권이 되어 소중히 간직했는데, 이곳에 화엄사를 자리 잡고 난 후 절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보라고 아래층 응접실에 두었더니 누가 가져갔는지 불행하게도 찾을 길이 없다. 다른 이에겐 쓸데없지만 나에겐 소중한 것이다. 혹여 이 글을 보는 자 중에 나의 스크랩북을 가지고 있거나 본 사람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란다.
첫 전시회를 마치고 나니 배우겠다는 사람도 찾아오고, 여기저기서 불사할 때마다 작품 좀 하나 찬조로 내 달라는 사람, 또는 개인적으로 한 점 보관하게 달라고 오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비록 어렵지만 불사에 보탬이 되라고 간혹 한 점씩은 내 주었는데, 이왕표라는 불자는 제주도에서까지 나를 찾아와 찬조 작품을 부탁하기에 한 점 주어 보낸 기억이 난다. 이 이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문동 사거리 종합 한의원 2층 10평 남짓한 공간을 얻어 송정 서도실 이란 이름아래 서도를 지도하였다.
May 31. 2012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