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과의 싸움
출가를 어린 나이에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잠 때문에 유독 고민을 많이 했다. 잠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잠이란 육근六根(안 이 비 설 신 의)의 경계境界를 쉬는 것으로서 일체 피로를 없애주는 참으로 좋은 것만은 틀림없다. 자, 그러나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이 한때라는 말이 있듯이, 공부도 한때라면 할 때 하여야하니 단연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나에겐 잠은 많아도 깨는 시간이 길지가 않다. 잠이 드는 것도 순간이지만 깨이는 것도 순간이다. 잠을 줄이기 위해서 기둥에 기대여 서서도 자보고, 앉아서도 자보고, 허벅지를 송곳으로 찔러보기도 하고, 꺼꾸로 서보기도 하고, 눈 주위를 지압하고 꼬집어보기도 하며, 입술을 깨물고 혀를 자극하여보기도 하였지만 모두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잠을 없애면 공부를 마냥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별의 별 연구를 다해봤다. 심지어는 약재 연구까지 하여 조제해서 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어느 것 하나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잠을 쫓아주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연구한 것이 1분 잠에서부터, 5분 잠, 10분 잠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을 실행해본 결과 제일 효과가 있었다. 그것은 공양시간이 돌아오기 1분. 5분. 10분 전으로 선택하여 누워 잠을 청하는 것이다. 눕는 순간 잠이 드니 잠깐이지만 깊이 잠이 들어 많은 잠을 잔 느낌이 든다. 공양시간이 되면 도반들이 모두 깨워 같이 가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잘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나는 아무리 잠이 많았어도 공양시간을 놓친 일은 없다.
강원을 나는 졸업하면서 서원을 하나 세웠다. 세상 모든 일 다 제치고 잠 한번 실컷 자보는 것이다. 어떤 사미승은 스님과 함께 살다가 스님이 밖에 3일간 다녀올 일이 있어서 굶지 말고 밥을 해 먹으며 있으라고 쌀을 3일분을 내주고 갔다 스님께서 일을 다 보고 돌아와 보니, 그때 내어 주고 간 쌀이 그대로 사미승 머리맡에 있고 깊은 잠에 빠졌더라는 것이다. 얼마나 볼일도 못보고 잤는지 얼굴이 노랗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나는 서울 개운사에 있게 되자마자 잠을 실컷 자기로 하였다. 밥 먹는 시간은 대중스님들이 알려주니 계속 세끼 밥만 먹고 자봤다. 아마 한 달도 넘게 잤을 것이다. 그러는 중에 어느 신도님께서 나의 졸 리운 눈을 보고 “에이! 법장스님은 밥만 먹고 잠만 자. 잠꾸러기 스님이야!”하며 “앞으로 잠꾸러기 스님이라 부를 꺼야” 하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나는 수도하러 온 수행자가 아닌가! 내 이래서는 안되지 하면서도 또 자는 것이다. 새벽이면 신도님이 기도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올라치면 “웬 스님들이 예불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잠만 자느냐!”고 하는 바람에 이 이후로는 진짜 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게 잠 많던 내가 어느 순간 변했다. 잠이란 내가 몇 날 며칠 자본 결과, 잔다고 해서 뿌리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이제부턴 공부에 더 기울여보자고 마음먹었다. 본래 나는 공부하고 싶어 출가할 정도였으니까 가능했다. 오히려 다른 스님들보다 한 시간 늦게 자고 새벽에는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서 먹을 갈았다.
나 자신만이 나를 다룰 수 있다. 누가 나의 일을 대신하리요. 게으름도 나한테 있고 부지런함도 나에게 있다. 그렇다면 성공도 나에게 있고 실패도 나에게 있는 것이다.
Jun 13. 2012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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