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는 열일곱 살 소녀다. 칠십 노인이 손녀딸 같은 소녀를 사랑한다. 70대 노인과 열일곱 소녀의 사랑? 될 법이나 한 말인가. 아니, 안 될게 무언가. 괴테는 74세에 19세 처녀를 사랑하지 않았는가.
박범신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70노인의 사랑과 성(性)에 관한 이야기 ‘은교’가 한국에서 화제라고 한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소설에서는 70대 노인이 열일곱 소녀와 사랑을 하는데, 현실에서의 박범신은 어떠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 문학이라는 건 허위로 쓰는 거지만, 삶의 본질 속에 내재된 진실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 그 소설 속에 노인이 보여주는 욕망도 내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지요.”
신문에서 노인의 성문제를 다룬 르포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파고다 공원 근처 노인들에게 박카스를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가 박카스와 함께 성(性)도 팔고 있고, 노인 성범죄가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소설이나 신문에서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얼마 전, 가까운 선배로부터 꽤 심각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부끄러운 이야기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나이가 70이지만 몸은 아직 짱짱한데 아내가 도대체 무관심이라 괴롭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다. 체면 때문에 허튼 짓 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이혼을 하잘 수도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냐는 하소연이었다. 우리는 마주 앉아 한동안 열을 올렸다. 그럴 수가 있냐고, 욕망은 죄가 아니라고. 젊음이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 늙음 또한 누구의 탓이 아니라고.
아, 그런데 그날 내가 왜 그렇게 열을 냈는지 모르겠다. 내 일이기 때문이다. 나이 먹어가는 우리 남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나이가 되면 나도 마누라에게 그런 대접을 받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습다. 아주머니와 터놓고 얘기를 나누어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하나마나한 얘기를 충로랍시고 해드리며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으니까.
사랑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나이와 관계없이 꺼지지 않는 게 우리의 딜레마이다. 본능을 어떻게 말릴 수 있겠는가.
평균수명이 부쩍 높아진 지금 몇 살부터를 노인이라고 불러야하는지, 70 나이를 노인이라고 불러 실례가 안 되는지도 모르겠다. ‘은교’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랑과 섹스는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인가. 노인들의 사랑과 섹스는 추한가.
누구나 늙어간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70이 된다. 나이가 들어도 불꽃처럼 타버리고 싶은 욕망은 여전하다. 나이가 들면서 슬퍼지는 게, 바로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소설의 주인공은 죽기 직전에서야 자신이 헛살았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본능과 본질적인 욕망에 대해 한 번도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못한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고백하는 것이다. ‘은교(隱交)’는 나이 든,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성(性)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정찬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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