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80]
▶ 모로베이 이야기
1769년 9월8일, 샌루이스 오비스포(San Luis Obispo)에서 포토롤라 주지사의 명으로 지금의 1번 프리웨이를 따라 북서 방면으로 진출했던 선발대의 페르난도 데 리베라(Fernando de Rivera) 대위는 말을 달려 부하들과 함께 바닷가의 한 지점에 도착하였는데 그 지점이 바로 모로바위(Morro Rock)가 있는 곳이었다.
1542년 최초로 캘리포니아 바닷길 탐험에 나셨던 포르투갈 출신의 탐험가 후안 로드리게즈 카브리요(Juan Rodriguez Cabrillo)의 일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해안가에서 매끈한 바위섬을 하나 발견했는데, 나는 이 돌 섬을 Roca del Morro(차돌 바위라는 스패니시)라고 이름지었다(역사학자들 간에는 이 Morro라는 이름은 스페인을 점령했던 모로족의 두상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가하면, 또 다른 뜻으로는 표면이 매끈한‘ 차돌’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우리는 스패니시 사전의 표기대로 차돌 바위라고 지칭하기로 하자). 우리는 이 Roca del Morro 근처에 정박하여 식수를 채운 후에 북쪽으로 항해를 지속하여 48시간 후에 소나무 만(오늘날의 몬트레이를 지칭함)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모로바위를 확인한 리베라 대위는 Juan Rodriguez Cabrillo의 일지에 기록된 대로 그들의 목적지인 몬트레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 지역이 오늘날의 모로베이(Morro Bay) 지역으로 앞에서 기술했듯이 카브리요가 모로바위라고 지칭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 후 모로베이에는 1587년 10월 18일 태평양을 건너 도착한 ‘희망의 우리 여주인’ (Nuestra Senora de Esperanza)이라는 스페인 범선이 있었는데 그 범선에는 필리핀 이주민들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로베이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온 최초의 필리핀 사람의 도착 지점으로 기록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 멕시코 랜초시대의 모로베이는 가축의 식량과 물자들을 공급받기 위한 작은 항구로 성장하였다가 1870년 미국인 프랭클린 릴리(Franklin Riley)가 정착하여 주변 목장의 유제품 운송을 위한 항구를 설립하면서 비로소 타운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모로베이는 전통적으로 전복, 굴 등을 채취하는 어업과 함께 낙농업이 발전한 곳이었는데, 1900년대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인기 있는 해변 휴양지로 탈바꿈하였다. 모로베이에는 흑기러기, 오리, 갈매기 등 다양한 종의 조류가 서식하는 지역으로 조류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주변에 모로베이 주립공원과 몬태나 데 모로 주립공원이 있으며, 주요 명소로는 모로바위(Morro Rock), 모로베이 항구(Morro Bay Harbor), 다이너지 발전소(Dynegy Power Plant) 등이 있다.
John Kim의 Spanish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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