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명 가수가 노래를 마치자마자 죽었다. 사인은 무엇이었을까. ‘질식사’였다고 한다. 작곡가가 악보에 ‘쉼표’를 넣는 것을 깜박 잊었다. 그래서 그 노래를 한숨에 부르다가 숨이 막혀 죽었다는 것이다.
현대를 스트레스의 시대라고 한다. 누구나 여유롭게 사는 인생을 소망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여유를 외적인 조건에서 찾는다.
경제적인 풍요로움과 시간을 바로 그 여유로운 인생의 조건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일단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 그리고 넉넉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는 필히 경제적인 조건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여유로운 인생’을 얻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린다. 미래의 여유로움을 바라보며 현재의 여유를 포기한 채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이중적 구조 속에 허덕이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이민 생활이라는 것이 특히 그렇다. 새로운 삶의 터전 가꾸기에 영일이 없다. 저마다 ‘아메리칸 드림’성취를 위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중문화구조의 환경에서 무언가에 쫓기는 듯하다. 그 모습은 마치 프리웨이를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변화한다. 그 스피드에 갇혀 뒤돌아볼 겨를이 없다. 뒤 따르는 것은 피로감이고 스트레스다.
이민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만 정작 누리지 못하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쉼일 것이다. 육신의 쉼도 쉼이지만 정신적 쉼이 없는 것이 이민 생활이기 십상이다.
누가 한 말이었던가. ‘쉼표 없는 악보는 좋은 음악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쉼표 없는 인생 또한 참 인생일 수 없다’고.
악보에는 쉼표가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선율이라도 쉼표를 없애버리면 연주자도 청중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쳐버리고 불협화음이 날 수밖에 없다. 삶의 쉼표 역시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하게 만드는 활력소가 된다.
‘쉼’을 그런데 어떻게 정의해야 하나. 그게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명소를 방문하고, 샤핑을 즐긴다. 또 관광지를 찾아 롱 드라이브에 나선다. 이런 것들만이 반드시 쉼은 아닐 것이다.
초록빛 풀밭, 초여름의 새순, 싱그러운 햇살 아래 흐르는 물에 발을 담고 녹음의 연주를 듣는 것, 욕기답청(浴沂踏靑)도 쉼이다. 계절이 주는 미묘한 변화, 그 행복감을 놓치지 않는 것도 쉼인 것이다.
또 힘든 가운데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것, 이 역시 쉼이 아닐까.
모처럼의 연휴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 주말부터 메모리얼 데이 연휴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만의 진정한 쉼’을 찾는 연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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