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어둠을 관찰하다’(Dark Study)라는 작품을 쓰고 있는데, 이 작품은 세 개의 문학 작품들로부터 비롯되었다. 머윈(W. S. Merwin 1927년 미국 출생)의 ‘겨울의 해질녘’이라는 시,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의 첫 문장, 그리고 이태백의 시 ‘달 밝은 밤에’가 그 세 개의 문학 작품들이다.
겨울의 해질녘
머윈(W. S. Merwin), 시
차가운 겨울날, 해는 친구 한 사람 없이 홀로 진다/우리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주고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아무런 바램도 없이 해는 진다/나는, 해가 진 후, 해를 따라 달려가는 시냇물 소리를 듣는다/시냇물은 기나긴 길을 오래도록 달려서 플루트를 가져왔다(번역 – 나효신)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의 첫 문장 – 생의 한복판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놓쳐버리고 응달진 숲속에 서있었다.(번역 – 나효신)
달밝은 밤에
이태백, 시
달 밝은 밤, 나 홀로 앉아 있네/세상사 훌쩍 떠나서/그런데 문득/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누군가 섬세히 뜯어 보는 거문고 소리/정녕 거문고인가?/아니면 한숨처럼 지나가는 바람 소리인가/그도 아니면/차가운 소나무가 떨며 내는 소리인가/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보는 소리인가/고요한 마음에 흩뿌려 보는 소리인가/먼, 먼 그 옛날의 님은 가고/이 세상 어느 곳에도 님께서 부르던 그 노래/기억하는 이는 하나도 없구려(번역 - 나효신)
위의 세 개의 작품은 모두 ‘어둠’과 관련이 있다.
겨울의 해질녘, 차갑고 쓸쓸한 낙조의 시간. 공치사 한마디 없이 때가 되면 지는 해. 그 지는 해를 따라가는 시냇물.
어둡고 습한 숲속에서 길을 잃고 홀로 서 있는 자.
한밤중 –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힘을 빼고 개울물에 떠내려가며 물과 함께 해를 따라가다… 해를 놓치고 시냇물을 벗어나 숲속에 망연히 서있기도 하고…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걷고 걸어서 어디에 도달했는가… 혹은 아직도 그곳에서 떨며 서있는 차가운 소나무에 기대서 있는가…
지난 가을에 시작했던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어둠이 내리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듣는다’라기보다는 ‘상상한다’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세상사 훌쩍 떠나서’ ‘홀로 앉아’ 밝음이 어둠으로 변하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그때부터 다음날 새벽이 올 때까지 나의 깨어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잠을 잔다고 해도, 원래 길을 잃는 꿈은 내 단골인데, 그런 종류의 꿈을 거의 매일 밤 꾸곤 해 왔다. 낮에도 밤에도 하늘이 보이지 않도록 빼곡히 서있는 나무들의 응달 아래 서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플루트는 어디 있는가…
몇 달을 이렇게 보내오고 있다. 작품을 쓸 적에는 혼자 있어야 한다.(일찍이 작곡가 모튼 펠드만은 ‘작곡가는 혼자여야 하고 외로워야 한다’고 했는데… 이 또한 사실이다!) 혼자서 이런 생각을 밤낮으로 하며 작품을 쓰고 있으니 어느 날부터인가 시난고난 앓는 사람처럼 기운이 없어졌다. 눈 밑에는 짙은 보라색과 검정색을 섞은 듯한 색의 주머니가 두 개 달렸고, 말이 줄었고, 외출은 아예 멈췄고, 전화기는 꺼져 있고, 오직 나 혼자만의 ‘소리 세상’에서 방황했다. 어둠은 짙어만 갔다…
지금은 4월초, 이 작품이 끝나간다… 나는 ‘기나긴 길을 오래도록 달려서 플루트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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