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재한 미국의 ‘God’
두 등산객이 사냥개에 쫓긴 곰과 맞닥뜨렸다. 신자 등산객이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를 흉내내 “하나님, 할 만 하시면 저 곰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무신론자 등산객이 “하나님은 없네. 내가 지오디(God)일세”라고 핀잔했다. 곰이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엎드린 신자를 지나 무신론자를 덮쳤다. ‘지오디’를 ‘디오지’(dog)로 잘 못 들은 탓이다.
무신론자를 개에 비유한 교인들의 우스개다. ‘god’를 거슬러 쓰면 ‘dog’가 되듯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건 개와 진배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엔 기독교 교리보다 무신론이 훨씬 매력적인 모양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하나님 망상’은 20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고 한국어를 포함한 31개 국어로 번역됐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게 아니라 인류가 하나님을 창조했다는 도킨스의 주장에 동조하는 유명인들이 엄청 많다. 리처드 버튼, 캐서린 헵번, 버트 랭카스터, 잭 니콜슨, 브루스 리, 조디 포스터, 브랫 핏 등 톱스타들과 존 레논(비틀스), 배리 매닐로, 빌리 조엘 등 톱 싱어들이 그렇다. 천재화가 고흐도, 작곡가 비제, 라벨, 생생, 쇼스타코비치도 무신론자였다.
CNN의 래리 킹, ‘마약복용 사이클링 챔프’ 랜스 암스트롱, 투자의 귀재라는 워렌 버핏과 조지 소로스,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 같은 석학도 무신론자다. 카뮈, 체홉, 소머셋 모옴, 아서 밀러, 아이작 애시모프 등 작가들도 그렇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물론 레닌, 스탈린, 고르바초프, 마오쩌둥, 장쩌민, 피델 카스트로와 김일성 3부자 등 유물론자들도 그렇다.
기독교 신앙을 기초로 세워진 미국에도 무신론 바람이 거세다. 매년 크리스마스 무렵 워싱턴주 청사 현관에 성탄트리와 함께 말구유의 예수탄생 모형이 장식되면 무신론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 옆에 ‘신은 죽었다’(니체)거나 ‘종교는 아편이다’(마르크스) 따위의 어록이 적힌 팻말을 세운다. 텅 빈 교회가 갈수록 늘어나 서유럽 풍조를 닮아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딴판이다. 몇년 전 ‘퍼레이드’ 잡지의 설문조사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응답자가 69%, 일상적으로 기도한다는 응답자가 77%였다. 자녀를 종교적으로 양육할 의무가 부모에게 있다는 응답자가 75%나 됐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5%), 하나님의 존재여부가 헷갈린다(7%), 영생을 믿지 않는다(12%)는 등 무신론적 응답자는 극소수였다.
권위의 퓨 리서치가 올봄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더 뜻밖이다. 총 1만13명의 응답자 중 절반이 “불신자 사위나 며느리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타 인종도 괜찮다(89%), 타 국적도 좋다(93%), 총기 소유자도 OK(81%), 대학졸업자가 아니라도 괜찮다(86%)는 응답자 비율과 대조적이다. 특히 ‘거듭난 기독교인’은 쌍수로 환영한다는 응답자가 91%나 됐다.
이번 주 퓨 리서치가 발표한 또 다른 여론조사 결과는 미국인들의 달라진 신앙관을 반영해 눈길을 끌었다. 교회와 교계 지도자들이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더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응답자가 49%나 됐다. 지난 2012년엔 40%였다. 동성결혼 찬성자가 49%로 2월 조사 때보다 5%포인트 줄어든 반면 반대자는 41%로 2%포인트 늘어났다.
미주 한인들의 신앙열기는 자고로 뜨겁다. 공식 집계는 없지만 한국일보가 수년전 대대적으로 행한 서북미 한인사회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3.8%가 개신교 신자, 16.1%가 가톨릭 신자, 4.1%가 불교신자라고 밝혔다. 무종교인은 11.4%에 불과했는데 아직까지 서북미 한인사회에서 유명인사 무신론자나 정치이슈에 발 벗고 나서는 교계지도자는 볼 수 없다.
한국에도 튀는 무신론자는 없지만 교회의 현실 이슈 참여는 활발하다. 세월호 사태와 관련해 정부를 규탄하는 교계단체도 있고, 북한에 가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찬양한 목사도 있었다. 그건 그런데, 통일 후 남쪽 동포가 60여년간 무신론자였던 북쪽 동포를 (미국인들처럼) 사위나 며느리로 맞지 않는다면 진정한 민족통합이 어렵다는 생뚱맞은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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