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이민자의 희노애락 간직한 언덕의 섬
▶ 독립전쟁 당시 2,500명 독립군 병사 포로 만든 대패배지
20세기 초 지하철 들어오면서 급속도로 주택지 들어서
브로드웨이 경계 허드슨 강변은 중산층
할렘가 인근은 노동자나 극빈자 커뮤니티로 나눠져
2차대전 후 흑인.히스패닉 대거유입 현재 이르러
어느새 맨하탄 전장의 마지막 지점에 다다랐다. 거슬러 올라갈수록 달라지는 맨하탄의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볼거리의 특별함만큼은 뇌리에 생생히 남는 듯하다. 어느 한 가지 얼굴로만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 뉴욕의 진짜 매력 아닐까 싶다.
■ 독립전쟁의 슬픈 기억이 남은 곳
맨하탄 최북단 지점에 위치해, 130번가 북단에 자리한 지역을 흔히 ‘워싱턴 하이츠( Washington Heights) ‘라 부른다. 동쪽으로는 할렘강, 서쪽으로는 허드슨 강에 접한 고지대로, ‘언덕의 섬’ 맨하탄에서도 가장 높은 지대로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 이곳에서 바라본 전경은 어느 방면 할 것 없이 다 훌륭하다.
예전에는 이곳을 할렘 하이츠의 일부로 간주했다. 하지만 1776년 워싱턴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이 이 일대까지 후퇴한 끝에, 현재의 포트 워싱턴 애비뉴 180번가에 요새를 구축하며 독자성을 띄기 시작한다. 현재 이 주변에 자리한 몇 개의 지명에 ‘포트(요새)’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도 다 이런 연유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전력이 우세한 영국군이 압박 작전을 펼쳐 워싱턴 군대의 주력군은 허드슨 강을 따라 북쪽으로 더 후퇴하게 된다. 당시 포트 워싱턴의 수비대 지휘관 나사넬 그린 소장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요새를 포기하라’는 워싱턴의 지시를 무시한 채 굳이 작전을 개시하다, 결국 2,500명의 병사를 포로로 만든 대패는 가슴 아픈 에피소드로도 유명하다.
■ 변모하는 인종적 구성
이후 워싱턴 하이츠는 오랫동안 농지로 이용되었으나 20세기 초 지하철이 들어오면서 급속도로 주택지가 들어섰다. 브로드웨이를 경계 삼아, 허드슨 강변은 중산층이 할렘가 인근은 노동자나 극빈자 커뮤니티로 나눠진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말 유럽 출신의 유대인이 대거 유입되며 인종적 구성을 바꿨지만, 현재도 이 계층 구분법만큼은 상존하고 있다.
2차 대전 후 이번에는 흑인, 히스패닉 등이 대거 들어오며 워싱턴 하이츠는 또 한 차례의 변화에 직면했다. 그로 인해 현재는 도미니카계가 집단으로 일대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바로 이들의 초기 생활상을 그린 작품이 2009년 토니상을 싹쓸이한 뮤지컬 ‘인 더 하이츠 (In the Heights)’. 가난한 이들의 생활상을 실감나게 묘사한 이 작품처럼, 실제 이 일대는 히스패닉 출신 유명인이 힘들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어린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한 시기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던 야구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2007년 양키스와 거액의 계약을 맺을 당시 ‘뉴욕타임스’의 해설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워싱턴 하이츠의 가난한 이민가정 출신의 소년이 야구 역사상 최고액에 계약했다. 바로 이것이 뉴욕 스토리다’.
<이수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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