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이란 가면이 필요 없는 사람일 것이다. 즉 있는 그대로의 진면목… 자신이나 남에게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 이런 사람은 설혹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해도, 본모습 그대로 하늘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언제나 가면을 벗고 살아 갈 수는 없는 법이다. 지위가 높든, 지위가 낮든 자신에 맞는 가면을 쓰고 각자의 연극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 햄릿의 고민은 운명의 갈림길에서 때때로 가면을 벗어야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삶을 위해 가치를 버릴 것이냐? 인생이란 그 어느쪽을 선택하든, 민낯 그대로의 피흘려야 하는 미완성이다.
인생에서 예술이란 다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처절한… 절망의 골짜기를 걷는 고통일지언정 사랑하는 그 무엇… 피흘림으로 보여주고자하는 민낯… 월계관일지도 모른다. (살아생전) 단 하나의 작품도 발표되지 못한 채 무려9개의 교향곡을 남긴 슈베르트의 이야기는 인생이라는 그 미완성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극명히 보여주고 있는 예라 하겠다. 세상에 가치있고 쉬운 일이란 없다. 그러나 최소한 그것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 설혹 그것이 미완성으로 남는다해도- 부족한 그대로 이미 작은 예술가는 아닐까?
‘미완성’이란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에 주로 붙이는 말이기도 하다. 부르크너도 교향곡 9번도 마지막 악장을 끝내지 못해 미완성 교향곡이라 불리운다. 이외에도 모차르트의 ‘레퀴엠’ 등도 있지만 제자들이 완성하여 ‘미완성’은 주로 슈베르트와 부르크너의 교향곡을 가리킨다. 아이러니는 2악장과 3악장뿐인 이 미완성 교향곡들이 완성과 다름없는, 아니 오히려 완성된 많은 작품들 보다 최고의 평판을 얻고 있는 곡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부르크너는 사망한 마지막 날까지도 악보 작업을 하다가 장엄히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신에게 바치려 했던 그의 마지막 교향곡은 숭고함과 작곡가의 최후를 장식하는 처연함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은 후일 작곡가의 사망 후 1,2악장이 발견되어 붙여졌다. 슈베르트의 최고의 작품이 미완성으로 남았다는 점이 너무 드라마틱하여 다소 과포장된 채 전해져 오고 있지만 사실 낭만파 교향곡 중에 ‘미완성’ 만큼 아름다운 교향곡이 작곡된 바는 없었다.
베토벤은 지고한 예술을 지향했고, 멘델스존이나 슈만도 슈베르트에 버금가는 선율미는 보여주지 못했다. 브람스 역시 이 교향곡을 듣고 “이처럼 친근한 사랑의 속삭임은 일찍이 들어본적이 없었다”고 감동했다지만 브람스의 고백은 빈말이 아니었다. ‘미완성’은 슈베르트의 사망후 37년만에 (1865년) 비엔나의 지휘자 요한 헬베크에 의해 초연되었는데, 객석은 저 마다 아름답고 서슬픈 곡조에 혼이 나간 듯 지하의 슈베르트가 다시 세상으로 흘러 나왔다며 감동했다고한다. 그러면 슈베르트는 왜 이 아름다운 곡조를 2악장까지만 남기고 펜을 멈춰버린 것일까? 그 수수께끼는 아직 풀길 없지만 다만, 작품 속에서 31세의 짧은 삶을 살다 간… 그 미완성의 한을 추측할 뿐이다. 미완성도 길이라면 길이다. 슈베르트의 이야기는 인생이 ‘미완성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지고가는 무게만큼 내면으로 커가는… 그 성숙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가을… 서정주의 詩 ‘국화 옆에서’가 떠오르는 계절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이 가을… 과연 누군들, 아쉬움 남지 않는 젊음의 뒤안길이 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맑고 순수한 것에 감동을 느끼기 마련이다. 어린아이의 마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미완성 교향곡… 고호, 슈베르트같은 불우한 천재들… 특히 슈베르트의 미완성을 듣고 있으면 인생이 무엇인가를 들려주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은 어긋난 시간의 미완성이요… 그 긴 탄식이다. 그래서 또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지만, 인생이란 어쩌면 모든 것이 미완성 교향곡, 아마추어인지도 모른다. 사랑하기때문에 헤어진다는 것… 또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모든 것… 진부한 드라마의 소재같지만 그게 또한 살아간다는 그 미완성의 모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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