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육군 전단 문안 작성자 회고 ” 전쟁을 덜 폭력적으로 만드는 수단”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대북 심리전을 위한 전단(삐라) 작성에 이용한 타자기를 "미국 병기고의 최신 무기"로 간주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시카고 트리뷴은 11일 재향군인의 날을 맞아 한국전쟁 기간 미군의 대북 전단 문안 작성자로 일한 한 노병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시카고 교외도시 에반스톤에 사는 제리 데피(87)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광고회사에 다니다가 미 육군에 차출돼 일본에 주둔하며 대북 전단을 만들었다.
데피는 "'퍼스트 RB 앤드 L 그룹'(the First RB and L Group)으로 불리던 새로운 조직에 배치됐고, '미국 병기고의 최신 무기'를 지급받았다"며 "바로 타자기"라고 운을 뗐다.
한국전쟁은 '선전'이라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심리전이 비중 있게 활용된 전쟁으로 알려져있다.
데피는 "워싱턴DC에서 훈련을 받고 일본 도쿄로 보내졌다. 군 상부의 지시로 몇 개의 작문을 해서 제출한 후 전단 문안과 라디오 방송원고를 쓰는 임무가 맡겨졌다"고 진술했다.
그는 "내가 쓴 글은 전문 통역사를 통해 한국어와 중국어로 번역됐고, 인쇄 후 항공기에 실려 북한 상공에 살포됐다"며 "라디오 방송은 전단이 목적하는 것의 '오디오 버전'이었다"고 설명했다.
데피는 당시 미군 당국이 타자기를 "앞으로 사용될 최신 무기"로 소개했다며 "적군의 마음을 허물어 무기를 던져버리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고 밝혔다.
그는 "설득력을 있는 감성적 언어로 적의 마음을 녹이려 노력했고, 효과를 봤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나왔다"면서 "북한군이 전단과 라디오 방송의 영향으로 항복을 해오거나 병사들이 전투를 포기한 사례가 있다. 사라진 부대도 많았다"고 강조했다.
데피는 북한 주민들에게 패전 상황을 주지시키기 위해 확대·왜곡한 뉴스를 적어보내기도 했다며 "중국에도 같은 일을 했다.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전쟁에 투입됐지만 총칼을 들고 직접 싸우지 않아도 되는 사실이 감사했다"면서 "4년의 군 복무를 마친 후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고, 글을 쓰는 일은 전방에 나가 싸우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했다"고 회고했다.
데피는 미군 기관지 성조지에 영화평을 쓰는 일도 했다.
그는 도쿄에서 전단작성 책임자로 진급했지만, 다른 젊은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고향과 여자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결국 밸런타인데이에 세인트루이스의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프로포즈했고, 3주 만에 여자친구가 도쿄로 와 결혼식을 올렸다.
데피는 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복귀한 후에 다시 광고기획사에서 일했고, 1962년 아트 디렉터인 아내와 함께 세인트루이스에 광고회사를 직접 차렸다.
그는 "현대에도 체제 선전이 전쟁은 물론 정치의 강력한 무기로 인식되고 있다"며 "지금도 전단이 살포되고 있고, 이 사실을 뉴스를 통해 종종 접하게 된다"고 말했다.
데피는 "한국전쟁에서 한 일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전단이 전쟁을 덜 폭력적으로 만드는 수단이 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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