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가 넘은 나이에 가주한의사 시험에 합격(본보 2014년 9월30일자 1면)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했던 1941년생 한인이 75세에 한의학 박사학위를 받아 화제다.
남들은 손주의 재롱을 받으며 살아갈 나이에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강영택(사진) 박사가 그 장본인이다.
강 박사는 서니베일에 위치한 국제한의대에서 한의학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지난 2014년 72세의 나이로 가주 한의사에 합격했었다. SF한인상공회의소 회장도 역임했던 그는 당시 북가주지역 최연장자 합격자로 화제가 된 인물이다.
당시 강 박사는 시험 합격의 비결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고 전하면서 한의사 시험을 5개월 앞두고 오전 4시에 일어나서 공부하다가 밀브레 도서관 개관시간인 아침 10시부터 밤 8시까지 도서관을 이용하는 등 하루에 13시간씩 공부했다고 털어놓기도 했었다.
60대 후반의 나이에 새로운 분야의 공부에 입문하느라 어려움도 많았다는데 한번 본 교과서의 내용이 몇 페이지 지나면 잊어지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기억력 감퇴로 인해 책 한권을 최소한 18번에서 19번씩은 읽으면서 주경야독에 매진했다고 한다.
이후 강 박사는 한의사 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만족을 하지 않고 박사 과정에 계속 뛰어든 것에 대해 "한의사는 전체적으로 다 알아야 하기 때문에 깊이 있는 학문을 하지 못한다"면서 "내가 꼭 하고 싶은 분야는 생약연구에 대한 것"이라며 지금까지 공부를 계속해 온 이유를 설명했다. 박사 과정에서의 공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노력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강 박사의 이력은 사실 공부와 사업의 접목이라고 할만하다. 한국에서 약대를 졸업, 약사 자격증을 소지한 그는 종로5가에서 대형약국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약관 29세 때인 1969년에 제약회사를 운영하면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MBA도 거쳤다.
하지만 좀 더 욕심을 부리는 차원에서 식품회사를 창업했다가 1973년에 발생한 에너지파동으로 인해 가산을 모두 탕진한 채 도미,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이렇듯 그는 이미 약사로서 대형 약국은 물론 제약회사를 창업했으며 식품회사도 운영했던 경험을 토대로 생약을 통한 한약의 서구화, 선진화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강 박사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생약연구에 앞으로 더욱 매진하면서 한편으로는 한인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임을 내비쳤다.
그는 박사과정을 끝낼 때까지 가족의 도움이 컸다면서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전폭적인 지원과 격려를 해준 아내와 끝까지 응원해준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다.
새로운 영역에서 도약의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며 노익장을 과시한 강영택 박사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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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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