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9년 새 미 리 박사가 1940년 하계 올림픽을 준 비하기 위해 다이빙 훈련 을 하는 모습. [LA타임스]
1981년 초 미국 수영잡지‘ 스위밍월드’에 ‘백인의 독무대였던 다이빙에서 백인이 할 수 있는 모든것을 유색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입증했다“는 내용으로 한 인물을소개하는 특집 기사가 실렸다. 지난 2일 향년 96세로 타계한 한국계 미국 다이빙 영웅 새미 리에 관한 글이었다.
1920년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서 한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5피트2인치의 단신이지만 미국 올림픽 역사는 물론 세계 다이빙사에 한 획을 그은 거’ 인‘이다.
그는 28세의 적지 않은 나이였던 1948년 런던올림픽 남자 다이빙 10m 플랫폼에서 우승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 4년 뒤에는 헬싱키올림픽에서도 같은 종목 우승을 차지해 사상 처음으로올림픽 다이빙 2연패를 이룬 남자선수가 됐다.
당시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다이빙에서 인종차별과 편견을 딛고 이룬 업적이라 의미가 더 컸다.
그는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에는 수영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수영장 출입이 허락된 뒤에는 그가 훈련하고 나면 수영장에 물을 새로 받았을 정도로당시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은 심했다.
그럴 때마다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이민자였던 그의 아버지는어린 아들에게 한결같이 말했다.
“선조들의 인종적 배경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훌륭한 미국인이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다인종 사회인 이 미국에 아시아인의 훌륭한 자질을심어주는 것, 그것은 너의 의무다.”나아가 올림픽 2연패를 이뤘고,1953년 아시아계로는 유일하게 미국내 최고 아마추어선수에게 주는 설리번상을 수상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1960·1964년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팀을 이끌었고,1984·1988년 올림픽에서 2회 연속2관왕에 오른 그레그 루가니스 등세계적 스타 선수들을 길러냈다.

지난 2010년 미주동포후원재단으로부 터‘자랑스런 한국인상’을 수상한 새미 리 박사.
미국 한인 사회에서 살아있는이민 영웅으로 추앙받아온 그는2010년에‘ 제5회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2013년에는 한미우호단체가 주는 ‘올해의 미국 한인 영웅상’도 받았다.
LA코리아타운에는 그의 이름을딴‘ 새미 리 광장’이, 웨스트모어랜드 애비뉴에는 ‘새미 리 박사 매그닛 초등학교’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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