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행사가 있기에 몸을 깨끗이 하고 가야 한다. 여유만만하게 오늘 이발부터 해야 하지만 수시로 변하는 마음, 목욕시킬 기회를 잡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다. 듬성듬성 수도 적어졌고 색깔도 변해버린 힘없는 머리카락이 자라서 귀의 반을 가리고 있다. 돋보기를 끼고 바짝 다가서서 면도를 먼저 하고 날카로운 바느질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하는데 ‘아야’ 하는 절규가 귓전을 울린다.
첫 번째 비명이다. 귀의 둥글게 올라가는 접점의 늘어진 일부가 저항 없이 예리한 가윗날에 끼어든 것이다. 피가 잠깐 스며 나오기에 두 손가락으로 압박지혈을 시도하며 소독약을 꺼내서 바르는 순간 터져 나온 두번째 절규가 메아리 되어 집안에 퍼진다. 상처 난 곳에 소독약을 몇 번씩 바르는 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픈 것은 사실이다.
지금 남편의 상처 정도는 압박으로 충분히 피가 굳게 되어 있는데 계속 나오니 반창고를 붙였다. 엉겁결에 반창고를 붙이는 바람에 표적도 빗나갔고 희미한 머리카락도 몇 가락 함께 묻어 버렸다.
그 와중에 의식하지 않으면서 목욕을 해야 한다는 개념은 있었는지 아무 저항 없이 욕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는다. 머리 먼저 감기고 비누칠한 천연 수세미로 목 주위 등 허리까지 앞으로 돌려 깨끗이 씻어준 다음 나머지는 본인이 씻도록 했다.
나는 목욕 후 갈아입을 옷 준비하고 있었는데 언제 나왔는지 기분 좋게 의자에 앉아 있다. 머리가 닿는 곳에 눈에 보일락 말락 깨알 같은 피의 반점이 몇 군데 있다. 침대로 옮기고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보니 베개에도 몇 방울 튄 곳이 있다.
아무리 손놀림이 빠를지라도 움직이는 사람의 귀에다 반창고를 붙인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희미한 머리카락이 몇 가닥 붙어있어 떼어내고 다시 붙여야 하는데 가까이 가면 밀어버린다. 조금 쉬었다가 반창고를 떼어내는데 "아 아야" 가슴 속 깊이에서 울려나오는 듯 길게 뻗는 세 번째의 절규이다.
왠만한 아픔에도 아야 소리 한번 하지 않던 남편, 하루에 적어도 네 번씩 약을 갈아 붙이는 치료 때의 아픔에도 아야 소리 한 번 하지 않던 사람이, 0.1밀리미터의 귀 상처에 태산 같은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소독약 바를 때의 아픔은 순간적인 것, 머리카락 당기는 아픔은 보통 장난으로도 하는 것을. 그런 견디기 힘든 세상의 모든 아픔을 혼자 껴안고 자기 것인 양 공포를 느꼈을까. 몸부림치는 그 절규하던 통곡소리 언제까지 내 가슴속에 메아리 되어 산울림으로 남아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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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전 은퇴의사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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