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새로운 시작이다. ‘봄은 고양이로소이다.’하는 이장희 시인의 따뜻한 시가 떠오른다. 특히 이상화 시인의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고 한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에 걸려 아프다. 국토는 빼앗겼으나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봄은 결코 빼앗길 수 없다는 간절한 몸부림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염원이 모여 존립해온 아름다운 나라, 내 모국에도 봄의 축복이 희망처럼 내려질 수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은 결코 희망을 전하는 봄소식은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 라면서도 마음이 계속 우울해진다. 구치소에서 보낼 그녀의 차가운 봄이 국가적 현실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듯해 몹시 슬퍼진다. 하지만 그녀는 한 여자이기 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기에 측은지심은 접어두기로 한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인간들의 허튼 욕망이 빚어낸 기괴한 그림자에 휘둘리며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 하면서도 모국에 대한 관심이 깊었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쏟아졌던 충격적인 언어들도 뇌리에 박혀 혼란스럽다.
하지만 촛불 시위가 질서있고 평화롭게 진행된 걸 보면,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봄 햇살처럼 쏟아질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신의 ‘좋음’으로부터 생겨났고, 세상의 모든 것은 좋은 것이다.’고 했다. 하지만 물질이 범람하는 인간 세상에는 선한 것만이 존재하는 건 아닌가 보다. 선한 마음을 갖고 태어난 인간이라 할지라도 욕심과 욕망의 허상을 좇다 보면 ‘좋음’의 것들이 암흑속에 삼켜져 버리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 어둠 속을 벗어 나오긴 쉽지 않은 것 같다.
봄의 햇살이 축복처럼 비추는 이 봄날에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아니하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도덕경 말씀이 떠오르는 건 왜 일까. 세상의 모든 물질과 욕망은 허망하고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닌가. 그런 줄 알면서도 쉽게 지족(知足)하기가 쉽지 않아 벌어지는 다툼들.
현재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감으로 존재한다. 그 많은 일들이 내 과거 속에 있었고, 나는 그 경험에 의해 형성된 존재다. 이 봄, 나는 스스로에게 “너는 어떤 존재인가? 욕망의 노예는 아닌가?”라고 묻고 들여다보면서 내 모국에, 세상의 곳곳에 봄의 축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김명순 수필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