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소녀가 울고 있다
구석진 작은방, 절망에 둘러싸여 엄마를 부르고 있다
지난여름 빨간 봉숭아 꽃잎을 콕콕 찧어
첫눈 같은 새끼손가락에 물들이던 순이가, 옥이가
봉숭아 꽃잎처럼 스러지고 있다
찢겨진 무명치마 귀퉁이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벗은 발은 허적허적 가시덤불 속 슬픔을 헤집고 있다
통곡 끝에 매달린 아이의 숨결에 더 이상 평화는 없다
전쟁을 위한 위안부로 소녀의 긴 검은 머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뭉텅뭉텅 잘려나가고
어제도 찢어지고 오늘도 짓밟힌다
난 이렇게 찢어지기 싫어요
난 이렇게 짓밟힐 수 없어요
난 전쟁을 위로하며 살고 싶지 않아요
하얀 눈처럼 살고 싶었어요
봄여름 가을을 햇살같이 지내다가
겨울밤 사뿐사뿐 하얗게 내려와
봉숭아 꽃물을 초승달로 간직한
첫사랑을 그리며 살고 싶었어요
수줍고 설익은 사랑 따위를 하며 살고 싶었어요
나는 소녀예요
손톱 끝의 꽃물은 흐르는 세월에 녹아내리고
폭력은 거짓의 그늘에 희미해졌지만
옆방 친구의 비명 닮은 시린 별빛을 쓰다듬으며
허기진 상처를 가다듬고 있어요, 오늘도
단발머리 소녀가 바라보고 있다
파렴치한 역사의 한가운데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
파란 하늘 아래 곱디고운 꽃잎인
우리의 순이가
우리의 옥이가
-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에
<
박경주 센터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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